지난 기획/특집

[새해기획 /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소외 이웃 돕는 시각장애인 김갑주 씨

김재영 기자
입력일 2003-02-23 수정일 2003-02-23 발행일 2003-02-23 제 233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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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멀쩡했다면 이웃 돌아보지 않고 나 사는데만 급급했을 것…
오히려 눈 먼 것이 행복합니다”
건실한 기업 꾸려 이익은 사회 환원
그룹홈 운영 16년째 장애아와 생활
광주재활신협.직업학교도 이끌어
김갑주씨(가운데)는 1987년 「꿈동산 그룹홈」을 만들어 지체장애 아동들과 함께 생활해오고 있다. 그동안 그룹 홈을 거쳐간 아이들만 40여명 된다
『누구나 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저는 눈이 안 보이는 것 하나 더 있을 뿐입니다. 장애란 극복하기 나름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편함 속에서도 장애인과 소외 받는 이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갑주(44.이광렬 요한.광주 오치동본당)씨.

광주시 운암동에 위치한 「꿈동산 그룹 홈」에 들어서자 준수한 외모의 김씨는 구면인가 싶을 만큼 친근감 있는 맑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 주었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만 보고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그의 삶이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외식전문기업 두메외식산업(주)을 이끌고 있는 김씨는 호남 지역에서는 이미 능력 있는 CEO(최고경영자)로 소문 나 있는 사람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극복한 보기 드문 사람인데다 최근 몇 년간 지속돼온 불경기에 그것도 기업이 뿌리내리기 쉽지 않은 지방에서 연간매출 50억 규모로 꾸준히 성장시켰으며, 현재 150여명이나 되는 직원을 둔 중소기업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기업운영으로 얻은 이익을 사회와 장애인들을 위해 환원하고 있다.

1987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지체장애 아동들을 위한 「꿈동산 그룹 홈」과 1994년에 설립해 이제 9년째를 맞은 장애인 금융공동체 광주재활신용협동조합, 저소득층과 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해 만든 직업재활학교 동신자활후견기관은 그가 기업을 이끌면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을 대신 말해주는 결과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그의 피나는 노력과 눈물, 땀방울이 숨어 있었다.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대학교 3학년 재학시절이었다. 어느 날인가 이유 없이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그의 눈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한 병이었다.

「실명」이라는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 앞에서 모든 희망과 꿈을 접어야만 했다.

『시력을 잃었을 때 더 큰 어려움은 멀어져만가는 세상이었습니다. 2년 정도를 방황과 고통, 번뇌의 시간으로 지내자 눈만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몸까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방황 끝에 그가 얻은 결론은 어떻게 됐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천성 탓인지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강했다. 봉투 붙이기, 스킬자수, 대자리 만들기부터 포장마차, 튀김판매 등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던가. 그런 김씨에게 기회가 왔다. 86년 가톨릭센터 지하다방을 인수하게 된 것. 김씨는 사장이자 종업원으로 자원봉사자를 대동한 차 배달까지 했다. 당시 다방이라고 하면 캄캄하고 쾌쾌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종업원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매실차를 개발하고 다방 내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마인드로 매출이 날로 늘어났다.

그는 1년 동안 다방을 운영해서 모은 돈으로 장애아들을 위한 「꿈동산 그룹 홈」을 마련했다.

『그때만해도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은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돈 벌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해 그들이 가정에서 사는 것처럼 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룹 홈은 그 동안 40여명의 아이들이 거쳐갔으며 자신의 사비와 후원금으로 현재 5명의 지체장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92년 다방을 정리하고 우리 양념과 야채를 주원료로 한 야채뷔페 식당을 운영하는 등 위탁급식에 뛰어들었다. 광주 수피아여고 단체급식을 시작으로 광주 노동청 단체급식, 조선대학교와 동아병원 구내식당 위탁 운영 등으로 사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98년에는 두메외식산업 주식회사로 법인전환 했다. 현재는 학교, 기업, 기관 등 17개 위탁급식 사업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도시락, 출장 요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권익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던 그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해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한 장애인의 정치 과정, 참여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을 내기도.

『장애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우리나라 현실은 장애인에게 그저 동정만 베풀 뿐 많은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두메외식산업에 7명의 장애인을 고용했고 재활신용협동조합을 통해 조합원 자녀학자금 및 주택자금을 연 1%로 저리융자 해오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장애인들의 창업을 위해 무보증 자금지원 등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2000년부터는 동신자활후견기관을 설립해 장애인과 저소득층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시락, 두부, 제과제빵 등 각종 요리기술을 가르치는 직업재활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기업체 대표, 신협 이사장, 그룹 홈 원장. 실질적으로 매일같이 이끌어야 하는 조직만도 3개나 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리저리 신경 쓰느라 바쁘지만 김씨는 늘 밝은 모습으로 직원 개개인의 사소한 어려움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제가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제가 정상인으로 살았다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고 나 사는 데만 급급했을지도 모르죠』

『오히려 눈 먼 것이 행복하다』며 소탈한 웃음을 머금은 김씨의 모습은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작은 예수의 얼굴이었다.

김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