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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기획 /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기름 팔아 이웃돕는 김현철씨

박경희 기자
입력일 2003-02-16 수정일 2003-02-16 발행일 2003-02-16 제 233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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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시 1리터당 1원의 정성이 따뜻한 이웃사랑으로 전달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받은 은총 나눠야죠”
출소자 위한 장학회 준비 “희망 갖도록 돕고 싶어요”
『주님께 받은 축복을 함께 나누려고 할 뿐입니다』

한 경상도 사나이의 뚝심있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분도」 즉 축복을 의미하는 「베네딕토」라는 세례명이 자연스럽게 와닿았다.

대구 동인동에서 「분도석유」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철(베네딕토.44.대구 삼덕본당)씨는 『있는 사람들처럼 많은 기금을 이웃들을 위해 내놓지는 못하지만,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고 얻은 축복을 나누려고 애쓴다』며 이웃을 향한 작은 사랑실천을 들려줬다.

눈을 돌려 한쪽 벽에 붙여진 「주유시 리터당 1원의 정성이 따뜻한 이웃사랑으로 전달됩니다」라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1만원 남짓의 돈이지만, 4년째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그날 그날의 적립금을 보내고 있다.

이렇듯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의 이웃사랑은 곳곳에서 펼쳐진다.

김씨는 10년전부터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에 기름을 나눠주고 있다. 석유배달원으로 일할 당시, 자전거에 석유 한통 싣고가서 기름 넣어주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따뜻한 정을 느꼈다.

돈이 없는 이에게는 그냥 기름을 넣어주기도 하고, 복지시설 등지에는 절반만 받고 기름을 대준다.

기름 뿐만이 아니다. 수년째 경로당 어르신들의 효도관광을 마련해오고,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에게 점심식사를 전할 수 있도록 복지시설에 승합차를 지원하고 있다. 또 지난해 장애인 합동결혼식을 주선하고 신혼여행을 보내주는 등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의 따뜻한 이웃으로 다가가고 있다.

젊은 시절, 사랑에 목말랐었기에 사랑나누기의 큰 힘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한때 세상에 대한 반항심에 주먹을 휘두르며 교도소까지 드나드는 어두운 시기를 보냈다. 아홉살때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은 그의 세계에서 너무 먼 곳이었다.

따가운 시선과 질시를 받으며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성당 한 후배의 사제서품식날. 「왜 저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습니까?」 절규하며 기도했다. 『제발, 사람답게 살게 해주십시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날 이후 김씨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게 됐고, 든든한 동반자인 부인 김월순(스콜라스티카.38)씨를 만나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나도 보란듯이 잘 살 수 있다」는 오기로 자전거에 석유통을 싣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저절로 나더군요』

10년 넘게 배달원으로 눈물나게 노력한 결과 1997년 「분도석유」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분도주유소」를 연데 이어 올 3월 두번째 주유소를 열었다. 사업이 번창하기까지 억척스러운 노력도 있었지만, 「정직한 분도」라는 슬로건에서 보듯 자신의 세례명을 내건 스스로의 약속과 성실이 밑거름이 됐다. 2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지금도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직접 배달다닌다.

그런 김씨에게 요즘 부쩍 힘이 솟는 즐거움이 생겼다. 바로 「분도장학회」 설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이 그러했듯, 교도소에 있는 이들이 죄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 장학회를 만들기로 했다.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희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돕고 싶을 뿐입니다』

지난해 12월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자랑스러운 국민상」을 받은 김씨. 과거가 있는 자신에게 큰상을 준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는 그는 『보속으로 받은 듯 가슴 한켠을 억누르고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듯 하다』고 말했다.

어두운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김씨에게서 자유로운 날개짓이 느껴졌다.

대구 동인동에서 '분도석유'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철씨는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고 얻은 축복을 나누려고 애쓴다.

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