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하은이' 입양한 강요셉 김마리아씨 가정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01-26 수정일 2003-01-26 발행일 2003-01-26 제 233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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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입장에서…’

처음 인터뷰 요청을 위한 전화를 했을 때 김마리아(44?서울 돈암동본당)씨는 『아이의 입장에 서보니 생각지 못했던 면이 너무 많아, 나누고 싶은 말이 많다』는 말로 선뜻 승낙 의사를 비쳐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요』라는 말마디와 함께.

의외로 쉽게 이뤄진 인터뷰 자리는 뭔가 색다른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하기에 충분했다. 김씨네 가정을 추천해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도 이들 가정을 치켜세우면서도 취재에 대해서는 오히려 김씨와 똑같은 『아이들을 위해서…(추천은 하지만)』라는 말로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성북동 아리랑고개를 한참이나 올라간 산중턱 주택가에 김씨네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조그만 정원이 있는 마당을 들어서자마자 큰 성모상이 눈에 들어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게 했다. 아니나다를까 집안으로 들어서자 집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십자고상, 성모상, 예수성심상, 이콘, 상본 등 각종 성물들은 마음을 다잡아먹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성물에 잠시 눈이 팔려있는 사이 김씨 가정의 새로운 주인공 하은(가명)이가 아빠 강요셉(46)씨의 팔에 안겨 수줍은 얼굴을 내밀었다. 하은이까지 포함해 다섯 식구다. 손님맞이를 위해 이제 막 잠을 깬 하은이를 중심으로 대학교 2년생인 첫째 레지나(21)씨와 올해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요한(17)군도 자연스럽게 둘러앉는다.

『어휴, 우리 하은이 잘 잤어?』『예뻐 죽겠네…』

언니 오빠의 호들갑 속에 벼르고 벼른 듯한 엄마 김마리아씨의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입장에 서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힘들어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정도인가요?』

적잖이 입양가정을 만나온 터였기에 대뜸 이렇게 시작된 김씨의 하소연 비슷한 말들은 그간 모르고 지내던 딴 세상, 그래서 그만큼 아팠을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엔 공개입양을 할 요량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하은이를 데리고 올 즈음을 전후로 가족과 친척은 물론 주위의 아는 사람들에게까지 아이의 이름을 공모했다.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뜻을 지닌 하은이란 이름은 그 후보작 중 하나다.

‘부끄러웠습니다…’

하은이를 입양하기까지 김씨네는 정말 소설같은, 아니 그보다 더 극적일 지도 모를 삶을 살았다. 김씨가 지난 1997년 본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하며 성가정입양원을 알게 된 것이 하은이 가족의 소설같은 삶의 시작이었다.

입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뒤에서 누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끄러웠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접하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만 가지고 있던 김씨는 결국 98년에 접어들며 남편 강씨에게 입양을 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그도 흔쾌히 응했다. 그런 후 하은이를 들이기 위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모든 가족이 환영하는 가운데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매주 한차례 이상씩 가족회의를 열었다. 큰딸 레지나씨가 가장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입양됐던 친구의 경험담이나 입양아에 대한 주위의 이야기가 벽이 됐던 것이다. 집안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도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몰라요』옆에서 놀고 있는 하은이의 볼을 살짝 꼬집어보는 레지나씨는 쑥스런 웃음을 지었다.

‘이웃 모든 아이가 내 아이…’

오랜 가족회의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지난 2001년 봄 온가족이 한마음이 됐다. 입양할 아이를 내심 결정하고 그 아이와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이를 위한 기도에 모든 가족이 동참했다. 매일 성서읽기는 보통이고 묵주기도 모임과 「다락방 기도모임」을 시작하자 이웃의 신자들까지 찾아와 함께 기도를 하고 돌아갈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렇게 7개월을 보내고 지난해 2월 태어난 지 보름 된 하은이를 새 가족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입양원을 오가는 길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접하고 꼭 5년만이었다. 아빠 강씨는 이 즈음 태몽을 꾸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5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아깝습니다』(마리아씨)

『하느님의 일, 옳은 일이라면 당장이라도 따라야 했었는데 너무 가족중심적이었던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요셉씨)

하은이가 들어오고 나서 이들의 삶은 크게 바뀌어 버렸다. 그 변화는 처음 하은이를 품에 안을 때 결정적으로 다가왔다.

『내 아이를 안는 느낌과 차이가 있지 않을까 내심 조바심 쳤지만, 처음 하은이를 안는 순간 첫 애를 낳았을 때의 떨림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것이 하은이 가족이 경험하는 조그만 기적들의 시작이었다. 그간 자신이 키워온 자녀들도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깨달음이 한순간에 다가왔다.

『이웃의 모든 아이가 내 아이도 된다는 비밀을 깨달았을 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깨달음이 주는 변화는 적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모두 자신의 자녀처럼 느껴졌다. 그간 지녀온 이기적이었던 신앙과 삶 자체가 변해버린 것이다.

하은이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대하는 게 엄마 아빠의 성호경 긋는 모습이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가르치기 전에 하느님, 예수님이라는 말부터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신앙을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 있는 동안은 항상 성가와 기도 테이프를 틀어놓는 등 들이는 정성이 적지 않다.

이렇게 1년 가까이를 지내는 가운데 하은이도 적잖이 변했다. 엄마 아빠가 기도를 할 때면 옆에서 조용히「기도손」을 하는 것은 보통이고 옹알이로 묵주기도를 따라하기도 한다.

간혹 주위에 입양을 망설이는 이들이 눈에 띄면 이들 부부는 자신 있게 입양을 권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갖가지 소유의식이 하느님을 향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에서다.

‘왜 그 나이에 고생하려 드느냐?’

그러나 하은이로 인해 체험하게 된 아픔도 적지 않았다. 『왜 그 나이에 고생하려 드느냐』는 주위의 말에서부터 『얘는 참 복도 많지, 이런 집에 와서』하며 하은이를 대하는 모습이 상처로 다가왔다. 가까운 이들이나 신자들조차 그렇게 대하는 현실에 부닥치며 하은이네는 잠깐잠깐 절망적인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다.

『우리는 하은이로 인해 정말 행복한데 사람들은 하은이도, 저희들도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초 공개입양을 하려던 생각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아직 입양 자체를 쉬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에서 하은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클 것 같아서다.

『저희는 괜찮지만 아이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저희에게 주신 또 다른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은이네는 최근 가족회의를 통해 이사를 가자는 제안을 내놓고 신중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하은이가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커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아이가 셋이라는 김씨, 그는 다시 한번 가족회의를 열 예정이란다. 또 한명의 하느님의 아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잘못된 아기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릇된 생각만이 있을 뿐이지요』

언젠가 우리 사회가 공개입양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싶다는 하은이네 가족의 기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십자가가 예사롭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