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안성 미양본당 이세찬·장길자씨 가정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3-01-12 수정일 2003-01-12 발행일 2003-01-12 제 233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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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기도’가 화목의 샘터
대대로 이어온 가정기도 … 온가족 꼭 함께해
어른공경 으뜸 덕목 … 하느님은 가장 큰 어른
『아범아, 기도드릴 시간이다. 어서 아이들 깨워서 내 방으로 건너오너라』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녘이지만,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에 위치한 이세찬(루가.45)·장길자(아녜스.40)씨 가정은 이른 새벽부터 부산하다.

이씨 가정은 집 뒤에 위치한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에서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면 일곱 식구가 모두 일어나 삼종기도를 바치기 때문. 할머니 정문국(글라라·78)씨부터 막내 용재(바오로·10)까지 이씨 가정은 새벽기도를 통해 하루하루를 가꿔나간다.

과수업과 축산업을 하는 이씨는 날마다 어머니를 매일미사에 모셔다 드린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이씨는 더욱 바빠진다. 네 아이, 정아(마리아.16).진아(젬마.14).용원(베드로.13).용재도 함께 미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손자손녀의 신앙 교육을 이끌어주시는 어머니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씨 가정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적인 구교우 집안. 박해를 피해 안성 땅에 정착한 고조부 이래, 이씨의 아버지 고 이순철(베네딕도) 옹은 이곳 안성 땅에서 신앙으로 7남매를 키워냈다. 차남인 이씨를 비롯한 6남매는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해도, 모두 신앙 안에서 한 가정을 이루며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다. 단,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이씨의 여동생 이데레즈뽈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현재 논산 센뽈여고 교사로 봉사 중이다.

이씨는 처음 부인에게 프로포즈 할 때, 아이는 셋만 낳아 잘 기르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 아이를 낳은 후, 이제는 됐다 싶었는데 한 아이가 더 생겨났다. 특히 장씨에게는 원치 않는 임신이었기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신앙인의 양심으로 잉태된 생명을 지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넷째를 가지고서는 좀 당황했어요. 무엇보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 조금 무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자 마음먹고 난 후부터는 더욱 더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부인 장씨는 막내 용재를 낳으면서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네 명이 있기에 집안은 그만큼 조용할 날이 드물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언제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뒤따랐다. 돌이켜보면, 네 명의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부부는 고백한다.

아이들 교육은 할머니의 몫. 할머니 정씨가 강조하는 부분은 신앙과 효심이다. 그래서인지 식사는 물론 과일 한쪽을 먹더라도 할머니가 가장 먼저고, 그 다음이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 차례다. 몸에 밴 어른공경은 바깥에서도 드러나, 아이들은 밖에서도 이웃 어른들을 만나면 반드시 인사를 드린다. 그래서 미양면 일대 동네 어르신들 중 이씨의 아이들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이씨 가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교회 봉사활동 또한 열심이다. 할머니 정씨는 지금은 건강을 조심하느라 미사 참례로 만족하지만, 할아버지가 살아 생전 본당 총회장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할머니도 본당의 굵직한 직책을 도맡다시피 해, 본당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지역 시의원을 역임한 바 있는 이씨도 10여년간을 본당 사목위원으로 활동했으나, 최근에는 생업이 바빠져 봉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바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 듯, 그의 아내 장씨가 본당 레지오와 꾸리아 단장으로 봉사하며 남편 몫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난한 농사꾼에게 시집와 노모를 모시고 아이를 넷이나 낳아 기르고…. 요즘 같은 세상에 어지간한 여자라면 해내기 힘든 일인데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러울 뿐입니다』 시어머니도 이런 며느리가 자랑스럽고 기특하단다.

교회 활동은 아이들도 만만치 않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한 미양성당(주임=이관배 신부)은 아이들이 매일매일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 학기 중에 아이들 넷은 매일 방과 후 성당에 들러 짧게나마 기도를 올린다. 부부는 매일 예수님을 만난 후 밝게 웃는 모습으로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이러한 환경이 주어진 것에 더없이 감사할 뿐이다.

큰딸 정아와 둘째딸 진아는 본당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고, 셋째 용원이는 복사를 서기 위해 매일미사에 나간다. 형과 함께 복사를 서겠다고 조르던 용재는 이제 한 살 더 먹어 복사를 설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자랑한다.

4남매는 성격도 한결같이 모두 명랑하고 온순하다. 저희들끼리 알아서 서로를 챙기고, 부모님이 목장에 나가면 누나들이 나이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혼자만 자라 자기 자신만 아는 요즈음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도 크다. 특히 둘째딸 진아는 『친구들은 언니나 오빠 혹은 동생이 있을 뿐인데, 나는 언니도 남동생도 있어서 너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이들이 이렇듯 속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는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가정기도」의 힘이 컸다고 이씨 부부는 믿고 있다. 이씨 집안 조상 대대로 물려온 가정기도 습관은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된다. 특별히 정해진 규칙은 없으나, 반드시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린다. 지금은 새벽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저녁기도 등으로 가정기도를 바친다.

새해를 맞은 이씨 가정의 소망은 소박하다. 큰딸 정아는 첫째답게 『올 한해도 배농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며 내심 집안 걱정을 한다. 둘째 진아는 『할머니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우리 4남매가 오손도손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막내 용원이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직도 정정하신 어머님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시고, 아이들도 별탈 없이 커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우리 가족은 너무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이제는 하느님께 받은 끝없는 사랑을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네요』. 부부는 보잘 것 없는 가정이지만, 풍성한 사랑을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드릴 뿐이다.

이씨는 『우리 가족은 「성가정」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평범한 가족』이라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성가정은 단순히 부러워할 대상이나 이상적인 꿈이 아닌, 주어진 현실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이라는 것을 그들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기도생활과 본당활동에 헌신적으로 봉헌하며 그리스도의 향기 가득한 성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세찬?장길자씨 가정.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씨 가정은 지난해 성가정 축일인 12월 29일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로부터 「성가정 축복장」을 받았다.

왼쪽 위에서부터 둘째 진아, 이세찬씨, 노모 정문국씨, 장길자씨, 막내 용재, 세째 용원, 첫째 정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삼종기도를 바치고 있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