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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바로보기] 스포츠 종교의 자본논리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언론학 박사)
입력일 2002-07-07 수정일 2002-07-07 발행일 2002-07-07 제 230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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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종교적 문화권력 형성"
인간이 황홀경과 초월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신의 역사」의 저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초월적인 경험의 원천이 말라버리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도록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니체 이후 그리스도교의 쇠퇴가 더욱 가속화되는 역사의 길을 걸어온 유럽이 기존의 종교 대신에 록음악, 스포츠, 마약의 선택을 통한 유사종교적 체험에 빠져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세계인의 문화축제인 한일 월드컵 축구는 이제 끝났다. 그러나 월드컵이 던져준 수많은 의미와 교훈은 계속해서 일상의 담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월드컵 담론 중에 하나를 든다면, 월드컵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단순한 축구게임이기보다는 「우리편」에 대한 열광으로 온 민족이 통합되는 「공동체」를 만든 국가적 종교의 특성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미 짜여진 대진표의 일정에 따라 정해진 경기장에서 제사장들인 태극전사들과 이들의 대사제인 감독이 규율에 맞춰 성스럽게 축구게임의 의식을 집전하며, 추종자들로 대변하는 붉은 악마들이 참여하여 『대~한민국』과 『오~코레아』라는 응답을 통해 일상의 억압과 스트레스에서 해방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츠 종교」의 배후에는 자본의 논리가 정교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스포츠가 상업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텔레비전 그리고 위성과의 결합이다. 위성방송의 출현은 「국경없는 텔레비전」을 실현하여 전세계 수십 억 인구를 시청대상으로 만들었다.

인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기 위해 이웃 마을의 전기를 도둑질하여 사용했을 정도로 시청 인구의 증가, 곧 시청률의 증가는 텔레비전의 광고수익의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광고들의 게임」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삼성, LG, KTF, 현대자동차 등의 광고주들이 수십 억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들이면서 자사의 이미지 개선이나 상품 마케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일종의 「문화자본」이 돼버린 스포츠는 한편에서 시장경제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기도 하지만, 이번 한일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보여준 한국민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는 자본의 힘으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민족주의가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세계화된 구조 속에 살아가면서도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다만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포스트 월드컵에 대한 지나친 천착으로 그 순수성을 상실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스포츠, 텔레비전, 그리고 시청자가 한데 어울려 유사종교적 기능을 보이면서 자본과 시청자 사이의 문화권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민수 신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