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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 가정을 살리자] (1) 선진국 추월한 저출산율

이진아 기자
입력일 2003-01-01 수정일 2003-01-01 발행일 2003-01-01 제 232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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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출산은 공동선위한 하느님 선물
‘가정중심의 사목 전환’등 필요
생명경시.이기주의 바탕한
죽음의 문화 만연도 큰원인
가정은 사회의 모체이며 인간의 기본 제도로 삶의 중심이다. 가정은 또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해 주는 근거이며 희망을 갖게 하는 원천이다. 교회도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성소(聖所)」라고 가르친다. 건전한 사회발전의 근간인 가정의 중요성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 본지는 생명존엄과도 직결되는 가정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심층 기획 「가정을 살리자」를 마련한다. 이 기획은 「출산문화」 「결혼문화」 「가정과 교육」 등 큰 주제로 범위를 나눠 각 분야별로 세부적인 진단을 시도할 예정이다. 첫번째로 「출산문화」중 저출산 문제를 다뤘다.

급속히 떨어지는 출산율, 낙태 만연, 이혼율 급증,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가치관 변화…. 물질만능,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결혼과 출산, 가정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을 가늠케 하는 징표들이다.

특히 선진국을 추월한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 야기를 비롯해 교회의 가르침에도 위배되고 있어 변변한 가정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던 정부와 적절한 사목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난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출산율(여자 1인당 출생아 수)은 2000년 현재 1.42명으로 세계 평균 1.53명보다 낮은, 지속적인 저출산율 국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1963)」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1)」 「둘도 많다(1982)」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1987)」 「사랑 모아 하나 낳고 정성 모아 잘 키우자(1989)」 등의 표어를 내세우며 펼쳐왔던 정부의 지속적인 가족계획 덕택에 출산율이 60년에 6명에서 70년대에 4명, 지금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같은 저출산 현상은 정부의 산아제한이나 출산장려정책과는 별도로 변화된 결혼관이나 자녀관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후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91년 73.7%에서 2000년 58.1%로 급감했다. 반대로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의견은 97년 9.4%, 2000년 10%로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변화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응답한 여성들은 15~29세의 젊은 연령층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출산장려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예견해준다.

저출산의 요인들

신세대들은 자녀를 노후를 위한 「보험」이나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지 않으며, 대를 이어야한다는 의식 역시 많이 엷어진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은 더 이상 부부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결혼과 출산을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이같은 가치관의 기저에는 사회병리현상처럼 퍼져있는 육아와 교육에 따른 끝없는 부담과 경쟁에 대한 두려움도 짙게 깔려있다. 무엇보다 양육과 출산에 대해 아무런 사회적 뒷받침 없이 여자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체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따라서 저출산의 원인을 요약하자면 ▲결혼을 장려하지 않는 분위기 ▲여성의 평균 초산 연령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 ▲가정생활과 직업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예견되는 사회문제들

일각에서는 저출산에 따른 출산장려정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데 있다. 출산율이 2.1에서 1.4수준이 되는데 일본은 30년, 네덜란드는 29년 걸린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40년에는 일할 수 있는 인구(15∼64세)가 2800여만 명으로 현재보다 600만 명 가량 줄어든다. 그러나 65세 이상의 노인은 지금의 네 배로 늘어 둘이 일해서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려야하고 전체 인구도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 노령화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저하와 국력쇠퇴로까지 이어진다. 또 노동인구 보다 부양인구가 더 많아지고 국민연금에서도 납부자는 감소하는 반면 수령인구는 늘어나 연금 자체가 고갈될 위험까지 초래하고 있다.

교회, 보조성원리 강조

교회는 부부가 인공피임, 불임수술, 더구나 태아를 죽이는 낙태에 의존하여 출산능력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 계획에 위배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 역시 오늘날 출산을 꺼리는 사회의 경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자녀출산이 곧 가정과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가정정책과 관련하여 늘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하여왔다. 교황청은 지난 83년 발표한 「가정권리헌장」에서 『공권력은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가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공권력은 그릇된 방법으로 생명 전달에 통제를 가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생명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존중받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한다. 국가가 자원을 보존하고 보호하듯이 인간출산을 더더욱 장려하고 보호하여야한다』(3조)고 밝혔다.

외국의 사례

저출산을 막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제도를 마련, 자녀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이른바 「1.57」쇼크(출산율이 1.57로 떨어진것)라고 지칭되는 출산율 저하현상과 인구의 고령화에 직면하여 94년부터 여성근로자에 대한 출산 및 육아휴직을 유급화하는 등 모성보호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바 있다.

또 독일의 경우는 부모의 정확한 수입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보육료를 부담케 하는 차등 보육료제, 보육교사의 교육을 일원화하는 방안, 보육위원회를 설립자와 운영자, 부모, 상담전문가, 학자로 구성하여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및 제도를 구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6세 될 때까지 양육 수당을 지급하며 프랑스는 둘째 아이부터 육아비를 지급한다. 스웨덴은 아예 저출산대책위원회를 조직, 앞으로 닥칠 고령화 사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늘날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마을 전체가 어린이를 돌보는 제도가 정착, 이혼율이 저하하면서 출산율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는 현상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전국의 보육시설이 2만여개에 이르고 있지만 정작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서비스는 부족한 상황이다. 2세 미만의 영아나 장애아를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일하는 부모의 근무시간과 어린이집 운영시간이 맞지 않아 애를 먹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사목적 대안 시급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치 시구마다 일정 수의 영아전담시설을 둘 것 ▲교사대 아동비율을 영아의 경우 1:3이나 1:2의 비율로 조정할 것 ▲장애보육시설 확대, 무상으로 지원할 것 ▲방과후 교육 전담시설 확충할 것 ▲직장 보육시설의 설치 의무조항을 폐지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실효성을 높일 것 ▲보육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무엇보다 국가는 자녀의 수를 제한하거나 거꾸로 많이 낳으라는 식으로 출산을 강요하기보다는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을 위해 육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출산정책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신세대부부들은 일방적인 가족계획보다 한 아이라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조직적인 대처방안 마련과 아울러 교회의 사목 대안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수원교구와 대전교구가 출산장려방안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과 생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송영오 신부는 『셋째 자녀는 교회가 키워야한다』면서 『장학금을 비롯해 셋째 자녀 무상 교육 등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부터 실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지속적인 기도운동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저출산 현상은 생명경시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죽음의 문화」에서 비롯됐으며 죽음의 문화는 『아기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며, 강제적 인구제한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광범위하게 발달해왔다. 때문에 가정주일, 가족피정, 가정성화 세미나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교회는 보조적 역할을 다하는데 힘써야 한다.

생명문화 정착을 위한 실천적인 생명운동도 교회의 몫이다. 선진국에서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로 자녀를 편히 키울 수 있는 사회여건을 만들어주면서 국민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한국 내 출산장려문화 정착을 위해 교회가 앞서 선험적으로 유아원 탁아소를 운영하고, 다출산 가정에 대한 지원도 격려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가정사목 관계자는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노령화에 대비, 가정중심의 사목 전환과 가정과 생명에 대한 종교·사회적 협력 증대, 반생명법 개정 및 폐지, 출산장려정책 등을 다각적으로 전개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