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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살리자] 동거가 좋아?, 싱글이 좋아?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3-08-17 수정일 2003-08-17 발행일 2003-08-17 제 236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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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헤어지고” 무책임한 편의주의
상대방에 대한 사랑 헌신 없는 단순 합의
동거 폭증한 프랑스는 이혼 50%나 늘어
“혼인제도 부정은 하느님 거스르는 행위
얼마 전 혼전동거와 속칭 싱글족들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혼전 동거 붐이 일고 있다. 동거를 알선해 주는 사이트 수가 늘어나고 동거를 희망하거나 계약동거자를 찾으려는 사람들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 독신자 하면 떠오르던 것은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속칭 싱글족들은 자신의 의지로 독신을 선택한다. 「네오 싱글족」이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독신자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을 타깃으로 한 쇼핑몰과 원룸형 주택도 인기다.

혼전동거나 독신 생활자의 증가, 이로 인한 가정공동체 해체의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혼전동거의 폐해 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법적, 사회적,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사회 극소수의 문화로 여겨지던 혼전동거나 독신이 대중매체의 희화화로 사회 전면에 떠오른 것은 가정해체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교회와 사회에 또 다른 걱정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좋아서 동거를 하는데….

「결혼에 앞서 상대방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과정이며,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greatbush)

「남녀가 좋아 동거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현실에 충실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nubira00)

모 일간지 혼전동거에 관한 「온&오프 토론방」에서 혼전 동거에 찬성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은 동거가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 전에 미리 살아보면서 적합한 배우자감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주거수단이라고 말한다. 또 서로를 의무관계로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 당 수 천 만원에 이르는 결혼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동거정보를 제공하고 상대를 알선해 주는 동거 전문 사이트는 대략 10여개. 수 천여명의 회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거주위치와 조건, 결혼 전제 여부 등을 밝힌 뒤 소위 자신을 「찜」한 이성과의 만남을 거쳐 동거에 들어간다.

화려한 싱글이 더 좋아?

올해 33세인 영화작가 I씨.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I씨는 결혼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남자친구와 말 그대로 「쿨」한 생활을 하는 게 일이나 자기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일도 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고, 거기다 애까지 생기면…저는 또 다시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겠어요』

속칭 싱글족들은 「결혼은 어떤 나이가 되면 반드시 해야한다」, 「남자는 경제력이, 여자는 외모가 뛰어나야 한다」, 「결혼은 부모의 뜻에 따라 해야한다」는 등의 편견에 도전한다. 최근 한 일간지와 여성포털 사이트가 20∼30대 여성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연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굳이 결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8.8%인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미혼자 수 110만 명. 독신자를 대상으로 한 속칭 싱글산업의 규모가 연간 6조원이라는 것은 독신이 소수만의 생활패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혼전동거나 독신의 급속한 확산은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일으킬 우려가 많다.

사회적 책임 배제한 행위

동거계약서에는 「계약동거 기간 동안 만남의 과정에서 서로가 맞지 않을 경우 합의하에 헤어질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동거가 양자간 합의와 양해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해도 동거 주선 사이트에 게시된 「동거계약서」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혼인을 통해 부부의 하나됨과 사랑을 깨닫고 그 속에서 헌신하는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계약서에 쓰인 조항을 통해 설정되는 것이다.

혼인은 사회적인 책임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는 그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나 방법상 다른 점 또는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동거는 다르다.

6개월간 애인과 동거하다 헤어진 L씨는 『책임감 없이 단순 합의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에 만약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였지만 결국 이 문제로 헤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비뚤어진 성 의식으로 인해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될 우려도 있다. 실제로 모 동거사이트의 회원 가입란 「동거 사유」 선택 조항에는 「성 관계 파트너」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성 개방 풍조 속에서 동거는 성욕을 해소하는 분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독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결혼관과 부부의 가치관 자체를 배제한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독신자들에게 피임은 자신의 독신 생활을 온전히 지켜주는 하나의 도구다.

많은 동거 예찬자들은 동거가 이혼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동거는 결코 이혼을 막을 수 있는 예방법이 아니다. 동거와 독신문화가 만연한 선진국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영국에서는 첫 동거의 평균 지속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동거 커플 중 결혼하는 사람은 열 명 중 여섯, 이들 중 35%는 10년 안에 헤어진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이혼율 오히려 높아

결혼은 「단순한 의례」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확산돼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프랑스에서는 1972∼2000년까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하는 이들의 수가 10배로 폭증했다. 반면 결혼식을 올리는 비율은 20% 줄었고, 이혼자의 숫자는 50% 늘었다.

동거문화에 대한 공론화가 자칫 동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동거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일 뿐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미 동거 자체를 사회제도화 시켜놓았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혼인은 거룩한 하느님의 일

이러한 동거와 독신 문화가 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대다수의 문화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 등 뉴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될 뿐 아니라 이러한 문화를 주도하는 계층 대다수가 젊은 층이라는 점, 그리고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혼인의 성사성의 덕분으로,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 징표이고 진정한 표현입니다」(가정공동체 13항)라고 밝힌다. 혼인은 이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의 분위기나 개인주의적 사고에 의해 결정되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 「거룩한 일」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또 『혼인과 가정 안에서 복잡한 인간관계가 수립되며 그 관계를 통해서 각 사람은 「인간 가족」과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안으로 들어온다』(가정공동체 15항)며 혼인과 그에 따른 가정공동체 형성이 교회공동체 건설에 중요함을 강조한다. 혼인제도를 부정하는 동거나 독신 등은 혼인제도를 부정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소명과 거룩한 성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거는 누가 권유하거나 권장할 사항도 아니고 또 법으로 막을 사항도 아니다. 또 동거나 독신문화의 확산은 대중매체가 개입해 만들어 낸 한 순간의 거품일 수도 있다. 사실 사회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주류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전통적 결혼관이나 부부관이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동거와 독신의 삶에 익숙해진 현재의 동거?독신 문화 옹호 1세대의 입지가 점차 넓어지고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대중문화로 자리한다면 그 이후 우리교회가 겪어야 할 가정해체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혼인생활을 잘 준비한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성공할 것입니다…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가능한 한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성공적 혼인의 시작과 성숙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더욱 적합하고 더욱 집중적인 혼인 준비 과정을 촉진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66항).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도적 권고로 펴낸 「가정공동체」는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함을 22년째 호소하고 있다.

이혼율의 급증과 출산율의 감소 등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동거와 독신이 문화화되는 상황에서 가정을 형성하는 혼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가르치고 가정생활의 전(前)단계부터 점진적으로 함께 하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절실하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