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사 (98)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입력일 2002-08-25 수정일 2002-08-25 발행일 2002-08-25 제 231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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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말 이교주의가 생활 지배
그리스도인은 영성수련에 매진
24. 가톨릭 쇄신의 영성 (1)

이 시대의 영성 학교들은 이제까지 다루어온 것처럼 수도회 중심이 아니라 국가별로 분류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각 나라의 특징들을 발전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영성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가톨릭적인 영성이고 로마 교회적이어서 개신교에 대항했다 하더라도 이런 분류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예수회 같은 수도회는 보편적으로 널리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으므로 어떤 영성 학교의 지도자들로 분류될 수 있다. 그들은 다분히 스페인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보여진다.

중세기가 끝날 무렵 교회는 분열되고 있었다.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윤리적인 방종은 사회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도들 사이에서 일어났지만 이교주의가 생활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라벌레 같은 사람은 작품 Gagantura에서 사회 일각에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라는 사상이 두루 지배하게 되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1501년에 이교도들이 보통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부패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회상을 보고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영성수련을 하면서 정해진 기도에 매진하였다. 이것은 실제로 개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중적인 묵상 기도의 방식이 프랑스를 통해 퍼져나갔다. 이 운동의 공로자는 위에서 언급한 요한 몸바에르였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 성 베르나르도, 휴그와 성 빅토르의 리쳐드, 카르투시오회원 디오니시우스, 제르송 등의 가르침을 따라 사람들을 지도하였다. 그의 주 의도는 수도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었고 묵주기도의 신비에 대해서도 묵상하게 하였다. 사회도 이러하니 여러 사람들이 나와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하여 힘쓰게 되었다. 중세기가 끝나 갈 무렵 출현한 가장 유명한 분은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이다.

그러나 치스네로스도 스페인에서 대단히 유명했다. 그는 1500년 스페인에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영성수련」을 출판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은 영성수련의 교과서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영성서적이었다. 영성수련은 4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정화, 조명, 일치 그리고 관상 기도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좀 더 상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묵상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고 성호경을 그은 다음 『오소서, 성령님』을 기도한 후 『주님, 어서 오사 저를 도와주소서』를 세 번 기도한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자신을 보면서 깊은 기도에 들어가 주제 셋에 대하여 묵상한다. 청원 기도로 끝내면서 가슴을 치면서 『주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세 번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시편과 기도를 바치면서 잠심의 상태에서 기도소를 떠난다.

정화의 단계는 거룩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묵상으로 되어 있다. 죄, 죽음, 지옥, 심판, 그리스도의 수난, 성모님, 천국 등이 주제이다. 조명의 단계에는 묵상할 때 자유가 허용된다. 죄의 고백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강조된다. 일치의 단계는 죄로부터의 정화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조명을 전제한다. 각자 하느님께 헌신하고 홀로 그분께만 봉사해야 하는 제목으로 인도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물질로부터 초탈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성을 사용하기보다는 사랑을 사용하여 하느님께로 향한다. 치스네로스에 의하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데는 여섯 단계가 있다. 만물의 원리이신 하느님, 우주의 아름다움이신 하느님, 세상의 영광으로서의 하느님, 무한한 사랑으로서의 하느님, 모든 피조물의 질서로서의 하느님, 만물의 통치자로서의 하느님, 무한히 관대하신 분으로서의 하느님을 묵상한다.

관상의 단계에 이른 영혼에 대해 치스네로스는 방법과 주제에 대해서 자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비록 그가 제르송의 「관상의 산」을 옮겨놓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방법은 셋으로 제시하였다. 첫째는 성 베르나르도가 가르친 것처럼 그분의 거룩한 인성을 깊게 생각하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사람으로 바라보며 세 번째는 마음을 위로 들어올려 그분의 인성과 신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각자의 기도 생활의 정도에 따라 영적인 끌림에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치스네로스와 같이 유명한 베네딕도회원은 루이 드 블로이다. 그는 묵상의 실천과 영성 훈련을 통하여 베네딕도회를 많이 개혁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무일도와 염경기도, 외적인 신심, 단식과 밤샘 기도 등과 같은 외적 영성훈련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만 이를 통해서 내적이며 초자연적으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점차적으로 이러한 영성훈련은 평신도에게로 전해져 베네딕도 수도회와 접촉을 많이 가진 기사 출신 로욜라의 이냐시오 같은 이들이 받아들였다. 그는 1522년 몽세라에서 이 영성 훈련을 받아들인 것이다. 도미니코회원들은 1505년 공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였으며 프란치스코회원들은 1594년에 이를 수용하였다.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