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사 (95)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입력일 2002-07-07 수정일 2002-07-07 발행일 2002-07-07 제 230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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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쇄신 요구하는 ‘준주성범’
지속적인 보속과 회개도 강조
23. 근대 영성 (2)

「준주성범」은 세기를 통해 찬양을 받거나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앵글로색슨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 영성 서적이 사색적인 영성에 반대하고 있으며 또한 쇄신과 개혁을 요구하는 교회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반이성주의, 세속과의 이탈, 보속과 회개의 지속적인 강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근대 영성의 기본적인 이론을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진실한 영성생활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므로 그분의 거룩한 인성을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관상하고 영혼을 해방시키는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 이 목적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가능하다. 만일 관상에 이르러 하느님을 보게되더라도 이는 지속적이며 본질상 지복직관과는 다른 것이니 관상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작용이다.

준주성범의 이론을 재구성하고 질서있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영성생활은 내적 삶이며 매우 힘든 전쟁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하고 난 후 준주성범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진실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경멸하는 것은 가장 높고 가장 이로운 교훈이로다. …자신에 대해 겸손하게 안다는 것은 이론을 통해 깊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하느님께 더 확실히 나아가는 길이로다』

하지만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과 피조물에게서 떠날 때만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행할 때 자신의 죄악과 불행함을 만나게 되며 겸손과 회개로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한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혼란한 양심을 진정시키고 평화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점에서 영혼에게는 항구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다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항구심은 유혹에 즉시 반응하는 감각들을 통제함으로써 지켜진다. 그러므로 영혼은 언제나 자애심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높게 올라가기를 원한다면 용감하게 시작하여 뿌리에 도끼를 대고 자신과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것들에 기울어지는 그대 내면의 무질서한 것들을 근절하고 파괴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을 무질서하게 사랑하는 그 악습은 모든 것의 뿌리인데 이를 근절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준주성범은 자신에 대한 죽음을 특별한 용어로 표현한다. 그것은 포기이다. 이는 자신을 끊고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론을 제시하는 맥락에서는 두 개의 극단이 있으니 그것은 하느님이냐 자신이냐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죽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느님께 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제로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비록 사말에 대한 묵상을 진지하게 하면 강한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영성생활의 두 번째 단계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본성과 은총의 움직임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 안에서 더욱 잠심하게 되면 자신을 더 잘 알게되며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 있어 자신 안에서 본성과 은총의 움직임의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사도 성 바울로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영과 육체의 법으로 말한 바 있다(로마 7, 14~25). 토마스 아 켐피스는 본성과 은총의 갈등을 사도 성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1고린 13, 1~13)처럼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영성발전의 세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능력을 깊게 의식하는 데 있다. 즉 하느님은 놀라운 섭리로 모든 사람들을 돌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구속하시는 신적인 선하심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의 지식과 돌보심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두려움을 지닐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선에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악의 구렁텅이로 쉽게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이다』(준주성범 1, 24).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첫 번째 자리는 언제나 사랑에 두어야 한다. 이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선하심을 각자가 아는 지식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구원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

준주성범의 이론은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 안에서 끝난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찾고 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며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완전히 승복함은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자주 묵상함으로써 유지되며 그분을 따라간다는 것은 「십자가의 왕다운 길」(왕도)이다. 그리고 그분과 일치하여 얻는 기쁨은 성체를 모심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은 성 베르나르도와 라인란트 신비가들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를 거쳐 17세기 프랑스 영성과 파베르(Faber)와 마르미옹(Marmion) 안에서 활짝 피어났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이는 실제로 삼위일체와의 일치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고 있다.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