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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특집] 한국 가톨릭과 불교의 교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2-05-19 수정일 2002-05-19 발행일 2002-05-19 제 229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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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불교 모두 열린자세
평화위한 ‘대화’ 이어질 것
길상사 개원법회서 김추기경 축사
사찰 성당에선 서로 축하 플래카드
성직.수도자 평신도 스님들과 교분
지난 1997년 12월 14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 개원법회는 고급요정의 대명사였던 대원각을 기증받아 사찰로 문을 열었다는 사실 외에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회주 법정 스님의 초청을 받은 김수환 추기경이 3천여명의 스님과 불교 신도들의 박수를 받으며 축사를 했다. 김추기경과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장익 주교는 법정 스님과 이미 20여년 이상 교분을 나눠 온 것으로 유명하다. 며칠 뒤 법정 스님은 성탄절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발표해 이날 추기경의 참석에 화답했다. 그 이듬해에는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12일 조계종 총무원장 고산스님이 명동성당내 주교관으로 정진석 대주교를 방문했다. 며칠 뒤 정대주교는 고산스님에게 축전을 보내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했다.

서로 경축 메시지 발표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해 가톨릭과 불교가 서로에게 이처럼 경축의 메시지를 전하고 교분을 나누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스님과 신부, 수녀들의 오랜 교분은 성당 신자들과 사찰 불자들간의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당에서 인근 사찰의 스님이 강연을 하거나 사찰 문앞에 성탄절을 맞아 플래카드를 내걸어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고 성탄 미사에 참석하기도 한다. 지역 주민을 돕기 위해 성당과 사찰이 힘을 모아 바자회를 열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불교에 대해 갖는 호감은 유별나다. 불자들 역시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톨릭과 불교는 사실 교리적으로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각각 오랜 역사와 전통을 거쳐 변천, 발전해온 두 종교적 전통은 따라서 구원론, 우주관, 인생관 모두 상이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서로 대치되거나 배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가톨릭이 비교적 타종교에 대해 열린 자세를 표명해왔고 불교 역시 배타적인 자세나 독선을 멀리하는 전통을 갖고 있어 서로 폐쇄적, 독단적인 입장을 비켜 서는 것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의 불교 이해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이처럼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자세를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불교와 가톨릭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던 시기이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일본에 머물며 선불교를 접했고 마태오 리치 등 예수회의 중국 선교사들은 초기에 불교식 복장과 삭발을 하고 서방의 승려로 행동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불교를 만나는 이러한 선교 방식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다만 일부 선교사와 현지인 성직자, 수도자들은 불교의 문화와 전통이 오히려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교회의 타종교관에 변화를 가져오는 기초가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타종교 전통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깊이 성찰하고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에서 불교를 포함한 타종교와의 대화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이후 아시아 교회는 불교에 대해 이해와 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화, 문화 연구 활발

1974년 4월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은 제1차 총회에서 최종성명서를 통해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힘으로써 이후 아시아 가톨릭교회는 불교신자들과의 대화는 물론 불교 사상과 전통에 관한 좀더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학문적 탐구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연대도 시작됐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신학적 연구와 대화의 성과들이 축적되어 갔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를 아직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가톨릭과 불교의 대화가 시작된 것도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돼 부분적인 성과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신학적인 성찰이 충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화 자체를 자제하자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교황청은 공의회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에서 비그리스도교 종교를 존중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가르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는 과업을 교회가 포기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화, 복음 선포는 함께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갈수록 빈번해지는 타종교인들의 상이한 기도유형과 방법, 수양법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그리스도교적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다. 한국 주교회의 역시 1997년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을 발표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잘못된 기도 방법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도교 고유의 전통을 배우도록 권고했다.

최근에 나온 신앙교리성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이러한 우려에 대한 공식적이고도 중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 문헌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적 유일성과 보편성에 관한 선언」으로 상대주의에 바탕을 둔 종교 다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가톨릭의 정통 신앙과 복음선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불교의 대화의 장은 무한히 열려 있으며 사회적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대화는 꾸준하게 지속되고 있다. 새 천년을 맞아 더욱 강조되고 있는 종교간 대화의 측면에서도 가톨릭과 불교의 교류와 대화는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과제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