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기본부터 다시] 1부 - 신앙고백 (16) 부서진 성물의 처리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02-05-12 수정일 2002-05-12 발행일 2002-05-12 제 2298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성물 자체를 공경하는 건 ‘미신’
『아이고메 이를 우야재』

『할매요 와 그라십니꺼』

『내가 실수해서 성모상 머리가 똑 뿌라짓삣는데 우야먼 좋노』

『못 고치면 버려야재 우야겠습니꺼』

『야 이눔아야 성물을 우째 버리노, 성사라도 봐야하나 우짜재』

『???』

신자들이 간혹 질문해오는 것 중에 성물에 관련된 것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수년간 정이든 성물이 부서지거나 훼손되면 안타까움의 차원을 넘어 범죄(?)로까지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한 할머니는 수 십 년 신앙생활 동안 부서진 성물을 버리지 못하고 다락방에 모아놓은 것이 대 여섯 개나 된다고 한다.

또 그 성물이 아니면 기도발(?)이 잘 안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든 성물이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는데도 교체하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안타까워한다. 기도를 위한 성물이 분심거리가 된 경우다.

우리가 성물이라 부르는 것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기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로 신성한 능력이나 하느님의 힘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비록 축복된 경우라 할지라도.

쉽게 이야기하면 봉헌된 성당도 부실공사를 했다면 붕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물 자체를 하나의 부적처럼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미신이다. 물신주의의 잔재다. 아들을 낳기 위해 돌부처의 코를 갈아 마시는 것과 같다.

초기교회에서는 소위 성물이란 것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이는 성상을 만들지 말라는 유대 율법의 영향과 이교인들의 종교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한 금지령 때문이었고 박해로 인해 신자임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 때문이었다. 미사도 특별한 용기가 아니라 일상용기로 거행됐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얻고 난 이후 새 신자들이 대거 교회로 유입되자 이들에게 신앙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표현이 필요했다.

대부분 문맹이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러한 상징과 표현들은 예술적 차원보다는 교육적 차원에서 이해됐다. 따라서 설교를 신앙이해를 위한 「듣는 도구」로 성화상과 같은 성물들을 「보는 도구」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물들이 대중화되면서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나아가 어떤 성상이 병든 사람을 고쳐준다는 등의 미신적 관념이 도입되면서 성물 자체를 공경하는 현상이 일어나 성화상 논쟁과 같은 큰 사건이 발생되기도 했다.

성물은 교회의 예배와 신자들의 교화와 신심 그리고 종교교육을 위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물에 대한 축복도 성상 같은 것에 하느님의 능력이 깃들도록 비는 것이 아니라 신앙심을 가지고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행위다.

성물을 사용하기 전 받는 축복예식을 보면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부서진 성물이 하느님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성물을 부순 행위도 불경한 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그 성물을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부서진 성물은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 사용하고 수리해도 보기가 민망하고 기도 중에 분심이 든다면 버리는 것이 좋다.

버릴 때 신심이 약한 사람이나 일반인들에게 나쁜 표양을 줄 수 있다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잘게 부수거나 태워서 버려도 상관없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