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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바로보기] 유사종교적인 TV

김민수 신부(서울대교구·신수동성당 주임·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언론학 박사)
입력일 2002-04-28 수정일 2002-04-28 발행일 2002-04-28 제 229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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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할까지 TV가 모두 해결
옛날에 욕심꾸러기 부자 형과 마음씨 착한 가난한 동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은 산 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정신없이 도망갔다. 그러다 구덩이 하나를 발견하고 훌쩍 뛰어내렸는데, 그곳은 달콤한 꿀 구덩이였다. 호랑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마침 배가 고픈 동생은 꿀을 실컷 먹었는데, 그 방귀냄새가 무척 달고 향긋하여 동생은 마을사람들에게 방귀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었다.

소문을 들은 욕심 많은 형도 산 속으로 들어가 호랑이를 만나 정신없이 도망치다 아무 구덩이나 푹 들어갔다. 냄새가 아주 고약한 똥 구덩이였다.

하지만 형은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에 마구 마구 퍼먹고 방귀장사를 시작했다. 『단 방귀 사려! 단 방귀 사려!』방귀를 팔러 다닌 형은 어떻게 됐을까?

이 이야기를 오늘날 종교와 TV에 빗대보자. 이야기에 나오는 형은 종교이고, 동생은 TV로서 바라본다면 너무 비약적일까?

성급한 결론을 보류하고 좀더 풀어보자. 사실 그리스도교는 20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풍부한 종교문화유산을 보유하면서 정보와 권력의 기득권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대중화된 TV는 새로운 정보와 오락을 제공하면서 자본과 권력을 형성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과거에 누렸던 정보의 독점력은 해체되고 그리스도교 가치관이 약화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TV는 그리스도교가 행해온 종교적 기능의 상당부분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1 TV의 『아침마당』이나 KBS2 TV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문제 있는 부부가 함께 출연하여 자신들의 갈등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상담뿐만 아니라 치유까지도 받는, 일종의 「고해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TV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치부까지도 드러낼 만큼 용감해졌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도 끌어들여 『맞어 맞어. 저건 내 얘기야』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또는 시청자를 이혼 찬반을 결정하는 배심원으로 참여시키게 한다.

결혼하는 10쌍 가운데 3쌍이 이혼을 하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신자들 중에 고해성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사제들도 신자들도 용서와 화해라는 깊은 차원보다는 형식적인 고해성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똥 방귀를 파는 형보다는 단 방귀를 파는 동생에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교회가 절감하고 있는가?

김민수 신부(서울대교구·신수동성당 주임·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