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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 - 유전공학과 생명윤리 (8)

안명옥 주교(마산교구 부교구장)
입력일 2002-03-10 수정일 2002-03-10 발행일 2002-03-10 제 228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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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았다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
정신과 영혼은 복제 불가
교회의 가르침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복제 또는 생명복제와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에 국한시켜 교황청 「생명학술원」에서 발표한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이라는 자료를 인용하고자 한다.

1) 역사적인 배경

지식이 진보하고 분자생물학, 유전학, 인공수정법 등이 발전함에 따라 이미 오래 전에 동식물의 복제 실험과 성공적인 복제가 가능해졌다.

1930년대 이후로 인위적인 쌍둥이 분할 방법을 써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실험을 해 왔는데, 이러한 방법을 부적절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복제라 할 수 있다.

1993년에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만은 2, 4, 8 난할기의 인간 배아에 대하여 실시하였던 쌍둥이 분할 실험 관련 자료를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해당 윤리위원회의 사전 승낙을 받지 않은 채 이루어졌는데, 당사자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윤리적 논쟁을 가열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2월 27일자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된 기사는 여론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아이언 빌머트와 K.H.S. 캠벨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에딘 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 팀의 노력으로 「돌리」라는 복제양이 탄생했다는 기사였다. 이 때문에 여러 위원회와 국내외 당국들은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새롭고도 당혹스러운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는 두가지 새로운 측면이 있다. 첫번째로 그것은 분할의 문제가 아니라 복제라고 정의되는 급진적인 기술혁신의 문제라는 점이다. 곧 그것은 핵의 유전형질을 제공하는 성체(成體)와 생물학적으로 똑같은 개체들을 만들어 내는 무배우자 생식이라는 문제이다. 두번째 이러한 형태의 정확하고 완전한 복제가 지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는 점이다. 곧 동물의 일생에서 이미 분화하여 성장해 버린 단계의 체세포 DNA는 분화의 형태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이상 그들 본래의 분화력을 회복할 수 없고 따라서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킬 능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불가능성을 극복함으로써, 이제 인간복제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처럼 보인다. 인간복제란 체세포상으로 제공자와 똑같은 개체를 하나 이상 복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건은 당연히 우려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초기,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던 시기가 지나자 일부에서는 연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고 언젠가는 가톨릭교회도 복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견도 나왔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므로 시끄러운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그 일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2) 생물학적 사실

인공생식의 한 형태라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복제는 두 배우자의 기여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성생식이면서 무배우자 생식이다.

그러나 이 복제 기술을 인간에게 확대 적용할 때에도, 이러한 체구조의 복제가 반드시 존재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여햐 한다. 정신과 영혼은 인간에게 속한 모든 실체 가운데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고,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모가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인공수정이나 복제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심리적인 발달과 문화와 환경은 언제나 별개의 인격을 만들어 낸다. 쌍둥이인 경우에서도 그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곧 닮았다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복제에 수반되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대중의 기대나 미묘한 분위기는 적어도 올바른 시각에 놓여져야 한다.

인간복제가 인격의 근원인 정신을 포함할 수 없음에도, 인간복제에 대한 생각은 무한한 능력을 갈구하면서 이미 다음과 같은 가정적인 상황들을 상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곧 비범한 재능과 미를 지닌 사람들을 복제하기,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재생하기, 유전병들에 면역성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을 고르기, 인간의 성(姓)을 선택하기, 선별된 냉동 배아들을 생산하고 그것을 나중에 자궁에 이식시켜 여분의 장기들을 제공하는데 사용하기 등이다.

마치 공상 과학과도 같은 이러한 가정적인 상황들과 관련하여, 복제가 「합당」하거나 「긍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제안들이 뒤이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복제기술을 적용한다고 예상할 때 이러한 통탄스러운 행위에 대한 인간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복제는 우생학적 계획에 속하므로, 그것은 조목조목 비난해 온 모든 윤리적 법률적 견해의 영향을 받기 쉽다. 한스 요나스가 말했듯이, 인간복제는 『방법상으로 가장 냉혹하고 목적상으로는 가장 비열한 유전자 조작의 한 형태이다. 그것의 목표는 유전 형질을 임의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적인 방법과는 달리 유전 형질을 임의로 균일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다. 인간복제는 생물학적인 측면이나 엄밀히 인격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있는 구조적인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양성교(兩性交)를 기능의 측면에서 완전히 쓸모없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들은 철저히 이용되어 순전히 생물학적인 몇가지 기능(난자와 자궁을 제공하는 것)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다음호에는 교회가르침에 따른, 이러한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 윤리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안명옥 주교(마산교구 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