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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바로보기] 스크린 쿼터를 둘러싼 잡념

김아자(마리아·영화프로듀서·평론가)
입력일 2002-01-27 수정일 2002-01-27 발행일 2002-01-27 제 228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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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떠나 영화다운 영화를
요즘 영화는 볼거리가 풍성해서 산업적 가치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우리 영화가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 오늘 뉴스만해도 스크린 쿼터(수입영화에 대한 규제책)를 감소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여기 오기까지 남북 분단 (쉬리/ JSA)과 조직폭력 (친구/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크게 기여했다. 그전에는 또 세기말적 엽기가 공헌을 했었다.

일련의 이러한 소재들이 우리나라의 영화 산업을 부흥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볼 만한 영화는 더욱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나 평론의 자리에서 공허감을 더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이 한창일 때 필자는 오히려 영화시장 개방을 주장했었다.

왜냐하면 소위 대박 터지는 소수의 영화들 때문에 아예 극장에 걸리지도 못하고 마는 독립영화들과 심지어 영화로 만들어 지지도 못하는 많은 영화인들의 애환과 한국 영화라는 정체성은 묻히고야 말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우에 대한 증명은 이제 더욱 드러난 셈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크린 쿼터의 사수가 관건이라면 이 영화들도 나란히 걸리고 본전 수준은 관객이 들어야 옳은 셈이다.

영화 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이를 따돌리고, 조폭 소재 영화로 떼돈 번 이를 여기 저기서 모셔다가 인터뷰하고, 광고 패러디로 쓰는 이 한심스런 영화 환경에서 살고 싶은 영화인과 관객이 얼마나 될까? 광고 찍다가 영화배우로 나서고, 방송 드라마에 출연하는 체제는 명작을 쑥쑥 만들어 내는 영화선진국에서는 찾기 어렵다.

이러면 또 사대주의라고 몰아 부칠 테지만, 재능은 한 가지 한 분야면 좋다고 보는 견지에서 예를 든 것이다.

예컨대, 이런 논리도 가능하다. 제 자식은 게임을 못하게 말렸으면서 그것을 산업으로 부각시키고 지원하겠다는 정부당국이나, 이에 또 부응해서 자식을 예능 영재로 만들겠다며 아기 때부터 아예 공부와는 담쌓고 놀이나 시키는 신세대 엄마들이나 매한가지로 보인다. 결국 자본주의적 발상에서 이 모든 것이 합리화, 정책화한다.

왜 이제는 스크린 쿼터를 완화해도 안심이라고 판단했는지는 뻔히 속이 보이지만, 그 속이라면 영 아니다.

왜냐하면, 스크린 쿼터 폐지의 전제는, 분명히, 또 말하거니와 작품의 흥행성 여부와 독립되게 영화가 만들어지고 보여질 수 있는 환경에서야 가능한 것이다. 지원책과 금융제도의 확립 그리고 영화인의 조합 결성 등이 그 내용이다.

김아자(마리아·영화프로듀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