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민의 날 특별기고] 주교회의 이주사목위 총무 정병조 신부

입력일 2002-01-20 수정일 2002-01-20 발행일 2002-01-20 제 2283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안에 이방인이란 없다”
해외교포사목 사제 138명 파견
외국인사목 전담은 한명도 없어
정병조 신부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세계는 점점 더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통신망은 더욱 치밀해졌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오늘날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더욱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가 전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1억5000만을 헤아리는 이민, 난민의 존재이다.

이제 인종과 문명과 문화와 이념들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관심한 채 머물러 있기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인류는 글자 그대로 지구촌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찾고 있는 이들에 대한 교회의 지속적인 사랑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이해하는 교회는 인간의 기본권을 선포하고, 유린당하는 인권을 대변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지칠 줄 모르고 인간의 존엄을 선포하고 옹호하며, 인간의 존엄에서 비롯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강조해야만 한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란 구체적으로 자기 나라를 가질 권리, 그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 자기 가족과 함께 살 권리,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질 권리, 자기의 민족과 문화와 언어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권리,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 존엄에 합당한 대우와 인정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복음적 요청 앞에서 신앙이란 단순히 보존되어야 할 하나의 유산일 수만은 없다. 하나의 현실이어야 하며 심화되고 발전되고 전파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고개를 돌려 우리나라의 실태를 살펴보자.

2001년 말 현재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주한 외국인은 50만명을 넘나들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30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합법 노동자는 6%, 편법(체류는 합법이나 취업은 불법인 연수생)이 30% 가까이, 나머지 미등록 노동자 즉, 불법체류노동자가 64%(약 17만명) 남짓하다. 여기 숫자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는데, 밀입국한 사람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또 높은 임금을 찾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일본으로 밀출국도 하고 있다.

지난 날 우리는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 문제를 온 세상에 알리고 규탄했는데, 지금은 한국에 온 필리핀 노동자들,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인권 유린에 대해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일본을 향해 비난했는데 이제는 아시아의 가난한 이주 노동자들이 모두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편적인 것은 어디서나 있는 것이고, 특수한 원인은 우리가 겪어온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가 '민족'하면 언제나 가슴 뜨겁고 눈물 흘리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반면에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주의로 흘러왔다. 이러한 배타성과 편견의 밑바닥에는 미디어에 의한 왜곡도 크게 작용했다.

흔히 우리가 이국적으로 생겼다고 하면 고맙다고 하는데, 이국적이라는 말에는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적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거의 다 백인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 문화 자체가 미국의 문화에 편입됨으로써 미국 언론이 갖고있는 시각이 그대로 여과없이 우리에게 이식된 탓도 없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아픈 부위 중의 하나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부인권(天賦人權)을 수호해야 할 한국 교회의 사명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1971년 한국 주교회의 산하에 이주사목위원회가 생겨난 이래 「이주사목」하면 해외 교포 사목을 떠올릴 정도로 국내 외국인 사목에는 애써 눈길을 돌린 채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해 왔음을 모질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적인 예로 해외 교포 사목을 위해서는 2000년 말 현재 138명의 한인 사제를 파견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국내 외국인 사목을 전담하는 한인 사제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얄미운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의 방안을 간단히 요약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해결방법이 어렵다하여 책임이 가벼워지거나 면제되지는 않는 법이다. 오히려 국내 외국인 사목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의 사명과 정체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사목이야 말로 오늘 날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훌륭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이방인이나 외래객이란 없으며 또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히브 13, 2)라는 이 메시지는 한국 교회가 이민의 날을 지내는 오늘, 각별한 의미로 우리 마음 속에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