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차동엽 신부의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5) 토털 서비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01-01-01 수정일 2001-01-01 발행일 2002-01-01 제 228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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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철학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봉사활동은 교회의 존재 이유요 얼굴입니다. 동시에 사는 보람과 신명(神明)의 원천입니다"

"불행하게도 신앙생활 18년 동안 '이거다' 할 만큼 천주교 색깔을 드러내는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보지를 못했어요. 그동안 본당을 너댓 번 옮겼는데 가는 곳마다 건축성금을 거두느라고 '돈' '돈'하기만 하고 일년 내내 집 짓고 허무는 일에만 골몰하다가 연말이 되면 주머니돈들을 모아서 불우이웃 돕기를 한답시고 어설프게 허둥지둥하는 꼴이 제 눈에 비친 교회의 모습 전부입니다"

"지역특색에 대한 연구·분석을 토대로 꼼꼼하면서 체계를 갖춘 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일의 계획에서 결과까지 구체적이고 작은 것부터 기록과 관리를 일관되게 이루어서 천주교 고유의 정신과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넓고 깊게 볼 줄 아는 혜안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그윽함을 지니고 있어서 평소 필자가 은밀히 존경하며 마음속의 선생님으로 여기던 한 형제의 귀띔을 가감없이 기록한 것이다. 몸이 많이 불편한 이 형제는 관심이 많아서 인천교구 시노드 때 일부러 사회사목분과를 선택하여 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교회의 대 사회 역할에 대한 이 형제의 통찰과 처방은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 의견은 이번 글의 주제인 '토털 서비스'(total service)가 의미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현대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연대하고 그들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봉사적 투신을 통해서 교회는 '인간의 수호자'로서 그리스도교의 매력과 향기를 발산하여 '비그리스도인 세상 속의 오아시스',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사가 된다'. 본회퍼(D. Bonh ffer)가 주장하듯이 "교회는 오로지 남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이며,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본연의 교회 사명에 충실하는 길이 바로 '토털 서비스'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서비스 산업의 눈부신 발달로 토털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자기가 원하는 서비스를 몽땅 받고 싶어한다. 이러한 추세 때문에 종래의 '구멍가게'는 점점 손님이 줄어들어 울상이고 편의 시설은 여가, 문화, 쇼핑 등의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종합 편의 시설, 곧 대형 마트와 쇼핑 몰 등으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서비스에 대한 이 같은 욕구는 종교 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신자들은 교회로부터 영적인 서비스 뿐만 아니라 현세의 삶을 행복하고 안정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발빠른 타종교에서는 법률 등 각종 상담 서비스는 물론 자녀 교육, 의료, 장의 등의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그런 종교 시설일수록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1세기 한국천주교회는 이러한 흐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토털 서비스 체계를 갖추기 위해 인력과 재원을 과감히 투자하려는 용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문제와 요구가 다양하듯이 접근 방법도 다변화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굶주리는 이들에게는 '긴급 구호적 방법'이, 전문적인 보살핌과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사회사업적 접근'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이들에게는 '개발적 접근'이 필요하고,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자신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사회 제도나 구조 정책에 기인한다는 자각이 있을 때는 '사회운동 방법의 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사목 관련 기관 및 업무의 '네트워크화'이다. 이는 본당간, 교구간 연대 또는 제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네트워크화를 통해서 경비와 인력, 시설 등의 열악한 여건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홍보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또한 시설과 업무를 중재해 줄 수 있는 정보망과 정보 안내 시스템을 적어도 교구 단위로 구비함으로써 토털 서비스 체계의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이미 원불교에서는 창구를 일원화하여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고 이를 홍보겵煞냘求 사회복지 정보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네트워크화'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요 필히 가야할 길이라 할 수 있다.

종합하거니와 21세기 교회는 결코 시장성의 논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종교의 시장화 현상에서 비롯된 서비스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대한 압박은 마침내 토털 서비스 체계 확충의 필요성에로 이어진다. 여기서 실패하면 교회는 결국 고객을 다른 종교에 빼앗기고 마는 낭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특히 최근에 쉬는 신자 비율이 우려할 만큼 증가하는 추세와 관련지어 이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