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차동엽 신부의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2) 바닥부터 다시

차동엽 신부 (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01-12-09 수정일 2001-12-09 발행일 2001-12-09 제 227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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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일부터 충실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타격이 뛰어난 대타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감독의 번트 지시를 소화해내지 못하고 어이없게 실패하는 장면을 가끔 보게된다. 대선수가 「한 방」위주로 연습을 하다 보니까 일찌감치 배웠을 야구의 「기본」 관리에 소홀했던 탓일 게다. 2001년도 미국 프로야구계를 들썩거리게 했던 일본인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매번 몸을 골고루 풀고 유난스러울 만큼 철저히 타격폼을 점검한다. 데뷔 첫 해에 그가 세운 한 시즌 신인 최다안타 기록이 빈틈없이 다져둔 「기본기」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 진입이니 뉴밀레니엄이니 월드컵이니 하는 거창한 신기루를 쫓으며 잔뜩 들떠서 홀린 듯이 살아왔다. 한쪽에선 민족이니 통일이니, 생태니 세계화니 하는 등 굵직한 주제들을 놓고 담론하던 사이에 다른 한쪽에서는 정-관계에 깊숙이 연루된 대형 금융사고와 사기극들이 연출되고 「대박」의 환상에 사로잡힌 욕심들이 정선의 카지노에서 집채들을 날렸다. 상업성에 빠진 공영방송의 부추김에 편승한, 쉬리 JSA 친구 등으로 이어지는 영화계의 대박 붐을 필두로 하여 사회 도처에서 「한번 크게」 떠서 하루아침에 팔자를 고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서에는 부실, 불량, 도덕불감증, 수치를 모르는 타락, 사치와 향락풍조, 공직자의 부정부패, 『국민 전체가 무엇인가에 단단히 씌워 있고 들떠 있다』는 등의 소견이 적혀 있다.

이러한 병증(病症)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시노두스, 하느님 백성, 평신도 사도직 등 커다란 슬로건을 즐겨 운위하는 사이에 (필자 역시 한 몫 거들었음을 고백한다) 신자들의 신앙실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왔다는 역설적인 현상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굳이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신앙심의 해이, 기도생활의 부실, 성사생활의 소홀 등은 관심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교회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시대 교회가 가야할 길의 첫번째 갈래는 「바닥부터 다시」이다. 「바닥」은 기초(base), 기본기를 의미함과 동시에 기초단위(cell), 작은 것, 사소한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우리가 착수해야 할 일은 이 바닥을 점검하고 회복 또는 구축하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도무지 미래가 없다. 앞으로 제시될 여타의 제안도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사회생활 영역에서 「바닥부터 다시」시작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제법 괜찮다는 직업을 청산하고 캐나다에 이민가서 막일을 하면서도 『이 나라에는 기본이 통합니다』라면서 행복해 하던 어느 중년의 고백 속에 우리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지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기본이 통하는 사회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첫걸음부터 다시 밟아가야 한다. 열심히 땀흘려 일하며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들, 농민과 노동자들이 보람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사회, 허황된 꿈에 들떠 불로소득과 사기를 일삼던 이들이 쪽박을 찰 수밖에 없는 사회를 건설하도록 우리 교회는 앞장서야 한다.

때마침 전국 평협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똑바로」운동은 매우 시의적절한 운동이라고 판단된다. 「나부터」, 「작은 일부터」, 「지속적으로」, 「공동체 생활」과 「사회 질서」의 기틀 마련을 표방하는 이 운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각, 말, 행동이 「바닥부터 다시」일신될 수 있도록 교우들이 동참해 주어야 한다. 이 운동이 보다 철학적이고 영성적인 기반 위에 추진된다면 양심, 인간성, 도덕의 회복과 사회 모든 분야의 질서확립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교회생활 영역에서 우리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 거창하고 그럴 듯한 슬로건, 교세확장, 성장지향에 사로잡혀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고 「더 높이」오르려고만 하던 욕심을 접고 겸허하게 「기본기」와 「기초단위」를 추스를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신자 각각의 신앙생활과 교회 공동체의 사목활동 양면에서 균형있게 행해져야 한다고 보인다. 우선 우리는 각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 곧 기쁜 소식에 원천을 둔 기본적인 기도 및 성사생활을 통해 매일 힘과 기쁨을 얻도록, 그리고 신자의 기본 의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공동체는 공동체 대로 가정, 소공동체 등의 「기초단위」에서부터 복음증거, 전례, 친교, 봉사 등의 교회 기본 사명이 본연의 요청에 충일(充溢)하게 수행되도록 사목활동을 꼼꼼하게 정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에 대한 일차적 처방은 간단하다. 복음의 정신과 능력이 「바닥부터 다시」삼투(渗透)되도록 기초단위와 기본기를 갈무리하는 것, 이른바 기초-복음화(Basic Evangelization)이다. 『말씀은 네 바로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로마 10, 8)는 사도 바울로의 표현마따나 「길」은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 시시한 것, 사소한 것, 작은 일, 평범한 일상의 의미를 깨닫고 그에 충실하는 것, 들뜸, 거품, 적당주의의 허구성을 직시하고 차분히 불리운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루가 16, 10)

차동엽 신부 (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