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차동엽 신부의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1) 시대와 역사(총론)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01-12-02 수정일 2001-12-02 발행일 2001-12-02 제 227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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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싣는 순서 -

1. 시대와 역사(총론)

2. 바닥부터 다시

3. 뉴 리더십

4. 인간성 구현을 지향하는 복음화

5. 토탈 서비스

6. 생명운동

7. 대안영성

8. 전 신자 은사 계발

9. 여성 입지의 현실화

10. 결론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임을 자부하는 가톨릭 교회는 절대 불변의 존재양식을 고수한 적이 없다.

교회는 2000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시대」의 정황에 따라 늘 새롭게 탈바꿈해 왔다. 주로 「성령의 은사」에 의존하여 유연하게 운용되어 오던 초세기 「나그네」(paroikia) 교회는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이래 점차 「거주지」(paroecia) 교회로 정착하면서 급속하게 「주교」를 근간으로 하는 「교계」(hierarchy)를 형성하게 된다. 이어서 트리엔트 공의회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7성사와 성직위계로 제도화되었던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의 교회로 모습을 일신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는 한편으로는 당시의 사회구조 및 정치제도의 양상에 보조를 맞추고자 했던 노력이, 다른 한편으로는 「박해」, 「동방 교회와의 갈등」, 「프로테스탄트 개혁」등으로부터 로마가톨릭교회를 지키려 했던 의도가 배어있다. 즉 교회는 각 시대의 여건과 도전에 따라 자신의 생존방식을 달리해 왔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실수와 과오는 있었지만 자신의 본질을 잃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교회가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교회이다. 『교회는 항상 쇄신해야 한다』(ecclessia semper reformanda)는 쇄신 원리에 교회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한 시대의 잣대로 다른 시대의 교회상을 비판할 수가 없다. 어느 한 시대의 교회상을 평가하는 신빙성 있는 척도는 바로 그 시대의 상황과 도전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시대는 교회에게 「새로운 생존방식과 사명」을 요청한다. 이는 역사를 섭리하시며 「시대의 징표」를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따라서 시대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은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과 같다. 이는 단순히 시대의 변화 속에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거나 「임기응변적으로」대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 가운데 교회가 빛(=성화직)과 소금(=사제직)으로서의 본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원리적으로」대처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영의 식별」능력(1고린12,10)으로 대세의 흐름을 읽어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를 따라 「옳고 거룩한」 흐름에 대해서는 기류에 동승하고 선도하되, 「오류와 죄악」의 물살에 대해서는 저지 또는 방향전환을 도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시대의 물결은 엄청난 기세로 도도하게 흘러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이를 대형 추세라는 뜻의 「메가트렌드」(magatrend)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지구화, 기술 제국주의의 등장, 생태 환경의 위기, 20대 80의 사회, 시장성의 증대, 글로벌 민주주의, 자율화, 다원문화, 공생체(共生體), 네트워크 사회, 유목민화, 양성 사회화, 일상성 혁명 등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치 않은 용어들이 머지않아 남의 얘기가 아닌 한국 사회의 현실을 설명하는 열쇠어(keyword)들이 될 것이다. 일찌감치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가 오늘날의 서구교회처럼 당황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파국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염려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근래 한국천주교회에 새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미 성료된 또는 진행 중인 교구별 시노드의 물결이 그것이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의 시대는 바야흐로 「시노두스」(Synodus)의 시대, 말 그대로 「함께 감」, 곧 동반여정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교회 안팎에 흐르고 있는 이러한 시류(時流)속에서 새로운 존재방식과 사명에로 교회를 부르고 계신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한국 천주교회가 나아갈 길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자 한다.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계층의 의견과 제언을 수렴하려고 노력하였음을 밝히면서 관심 있는 독자께서 고견을 들려주시기를 기대한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