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전교의 달 특집 - 장명옥 선교체험수기] 주님의 향기를 퍼뜨리는 선교 (5·끝)

입력일 2001-11-04 수정일 2001-11-04 발행일 2001-11-04 제 227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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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모든 이웃을 더욱더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변화된 하루 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제주교구 신창성당 순례 중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가운데가 필자)
8. 성령의 사랑을 체험한 순례

작년 2000년에 제가 제주도에 살고 있을 때 봄날이었지만 공기가 너무 맑아서 푸른 창공을 드러낸 모습은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케 했습니다. 광양본당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대희년 전대사를 받기 위해 성당 순례를 떠났습니다.

첫 번째 도착 한 곳이 신제주 성당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침 미사에 참례했는데 그 성당은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미사 후 저희 단원들은 차에 올라 해안 도로를 따라 가는 동안 묵주 기도를 바치며 저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을 느끼며 제 안에 머무시길 바랬습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서 은빛 물결을 이루며 반짝이다가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에 부서지곤 했습니다. 그 바다는 너무 맑아서 산호색을 띠고 있었고 먼 곳은 보라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차가 해안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을 때 까만 돌담에 둘러 쌓인 노란 유채꽃 물결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에 모습을 감추었다가 드러내곤 하는 수많은 바위섬과 저 멀리 수평선에 하늘 자락이 담겨져 마치 아치 모양을 한 구름사다리처럼 보이는 솜사탕 하늘.

「이 모두가 주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구나」하고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두 번째 순례지인 「신창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평일이어서 성당 안은 고요했습니다. 신창 성당은 약간 동산인 듯한 곳에 우뚝 서 있는데 언덕 아래는 파란 바닷물이 넘실거리며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성모 마리아 동산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맑은 햇살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머리가 희끗하신 수녀님이 해맑은 미소를 띄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며 본당 신부님께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전대사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바친 다음 「서귀포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지 산그늘이 조금씩 마을을 덮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 그 성당에 도착해서 복도에 들어섰을 때, 벽에 걸려있는 역대 내외국인 본당 신부님들의 사진을 보니 성당의 역사가 꽤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친 후 차에 올랐습니다. 줄곧 차안에서 묵주 기도를 하면서 이동을 한 탓인지 모두가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은총을 받아 차분히 가라앉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주도 동쪽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각자 집으로 돌아 간 뒤, 저녁 식사 후 모두 다시 저녁 미사에 참례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저희 모두가 그 날 하루를 온전히 주님께 바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 미사 후 성령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이 기도회에 대해 무심히 여겼으나 이날 따라 저는 신부님의 안수를 받게 되었고 저절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 통성 기도가 나왔습니다. 성당 순례 후 성령께서 제 마음에 가득히 채워지는 듯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저에게 항상 이웃을 더욱 따뜻이 사랑하라는 주님을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가슴에 간직하고 가족과 모든 이웃을 더욱더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변화된 하루 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9. 무거운 짐을 진 이웃을 만나다.

어느 날 양로원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간 곳은 정신적 육체적인 상태에 따라 방이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 간 곳은 연세가 많고 치매증상을 보이는 노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병약한 몸을 의자에 기댄 채 힘없는 눈동자는 먼 허공을 바라보며, 무료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남은 인생을 맡긴 듯이 보이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말동무도 해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렸는데 앙상한 뼈만 남아서 우두둑거렸습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 저려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이 다음에 하늘 나라에 갔을 때 주님께서 『너는 세상에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하고 물으신다면,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냥 머리만 조아리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나이 순서대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삶 안에서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병자 방문을 했을 때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랜 세월을 누워 있어서 욕창으로 인하여 몸에 진물이 나는 사람,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꺼져 가는 생명을 부둥켜 않고 시름하는 사람 등 말기 환자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오, 주님! 제가 만나는 사람들, 특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제 안에 깃들인 주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제 안에 머무소서'라는 기도를 매일 하는 중에 더욱더 이웃 사랑이 곧 주님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웃을 만나서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저를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무거운 짐을 진 이웃들을 만나서 사랑으로 다독거려 주시고자 애써 찾으시는 주님의 도구가 되겠습니다.

『오, 주님! 제 마음에 당신의 성령과 생명으로 채워 주시고 제가 가는 곳마다 사랑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