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1세기 한국교회와 소공동체 운동 (6) 소공동체 탐방 / 광주 치평동본당

박경희 기자
입력일 2001-10-28 수정일 2001-10-28 발행일 2001-10-28 제 227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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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통해야만 예비신자 등록
모집부터 세례받기까지 소공동체에서 관리
사목협의회 구성권 갖고 사목회장도 선출
매주 1차례 모임…소식지‘평화마을’발행
소공동체 운동은 새천년기 한국 교회의 바람직한 교회상을 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이다. 최근 본당의 비대화와 신자들의 인격적인 친교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에서 「작은 교회」인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본당 활성화를 꾀하자는 것이 요지다. 따라서 복음나누기와 친교를 통해 깨달은 바를 삶의 현장에서 실천으로 이어나가는 것을 소공동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존 신심 단체들과는 어떠한 역할 관계가 정립돼 나가야 할 것인가? 특히 성모 마리아의 정신을 모태로 활동해 온 레지오 마리애와의 관계 정립은 향후 소공동체 활성화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광주 치평동본당 '사랑' 소공동체 모임
광주 치평동본당(주임=류현수 신부)의 소공동체 사례는 특별하다. 레지오가 없는 가운데서 소공동체 체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선 본당 설립 당시 여건을 살펴보자.

치평동본당은 지난 98년 신도시인 상무지구 아파트 단지 내에 설립됐다. 인근 모본당에서 갈라져나온 본당이 아니라 광주 시내를 비롯한 전남 등 타지역에서 온 신자들로 이뤄져 결속력은 약했던 반면, 새로운 사목방향을 잡기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

레지오 없는 본당

이러한 특수성을 보완하기 위해 류현수 신부는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본당공동체를 형성하기로 결정했고, 신심단체인 레지오는 만들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기존 본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해오던 신자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본당 초기 상황에서 주위 이웃들과 친교를 나누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고 판단했기에 류신부는 레지오 설립을 미루는 대신 소공동체 사목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27개반으로 처음 시작했던 소공동체는 현재 12구역에 여성 62개반, 남성 14개반으로 뿌리를 내리게 됐다. 이 가운데 1개반을 제외하고 모두 아파트 구역으로 나눠진다. 오히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소공동체가 더 활성화될 수 있었다.

대표 명칭은 ‘사도’

치평동본당은 처음 2주에 한번씩 소공동체 모임을 갖다가 이듬해부터 매주 수요일을 본당 소공동체의 날로 정하고, 소공동체위원회를 구성해 매월 첫째주 화요일 정기모임을 갖는 등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각 소공동체 대표 명칭을 「사도」로 정하고, 본당 소공동체 소식지인 「평화마을」을 만들었다. 이 「평화마을」에는 각 소공동체 탐방을 비롯해 소공동체별 모임 장소, 본당 및 지역 현안까지 담겨져 있다.

특히 치평동본당에서 눈에 띠는 것은 사목협의회 구성권을 소공동체가 갖는다는 사실이다. 치평동본당의 사목협의회는 각 소공동체에서 추천받은 이들 가운데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사목회장을 비롯한 임원들로 구성된다. 이는 소공동체가 단순히 본당운영상의 하나의 조직체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교회」의 기초단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류현수 신부는 『사목자가 사목임원들을 임명하는 상하 방식이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본당공동체를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본당체계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소공동체가 바로 복음 나눔과 선교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매주 모이는 친교모임으로만 그치지 않고, 예비신자 모집·교리 등과 맞물려 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소공동체별로 소속 지역에서 예비신자를 모집하고, 환영식부터 세례받기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치평동본당은 환영식, 받아들이는 예식, 세례자 선발예식, 세례식 등 세례를 받기까지 총 4단계를 거치는데, 이 모든 예식에 소공동체 사도와 일원들이 함께 한다.

즉 소공동체를 통해야만 예비신자로 등록을 할 수 있고, 소공동체의 동의가 있어야만 각 단계를 통과할 수 있다. 또 예비신자는 의무적으로 소속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하며, 세례를 받은 후 자연스럽게 소공동체 일원이 되기 때문에 냉담으로 빠지는 확률이 낮다.

주일미사 참례율 66%

실제로 지난해까지 세례를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비율이 66%였는데, 신영세자들의 소공동체별 참여율은 41∼73%로 신영세자들의 신앙생활과 소공동체 활성화가 비례함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소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 4년째, 하지만 치평동본당에는 지금도 레지오가 없다. 매주 주회를 갖는 레지오가 없기 때문에 소공동체 활성화가 가능했다는 것이 이 본당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 대부분의 신자들도 소공동체 모임에 익숙해져 레지오 활동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겠다고들 말한다.

생활속의 복음 실천

이같은 상황은 본당 전례에서부터 성당청소, 병자봉성체 등 대부분의 활동이 소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매주 「복음나누기」를 통해 말씀에 귀기울이고, △독거노인 돌보기 △장애인 복지관 봉사 △치매노인센터 봉사 △노숙자 쉼터 방문 △아파트 단지 청소 등을 통한 생활 속의 복음 실천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렇듯 신자들이 조금씩 소공동체에 맛을 들여가는 상황이지만, 류현수 신부는 아직도 본당 소공동체에 미흡한 점들이 많다고 말했다. 류신부는 『소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사목자의 인내와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하고 『사목자는 신자들 스스로 자신이 「교회」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여성소공동체에 비해 남성소공동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밝히고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은 진정한 소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주일학교, 청년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주 치평동본당 사랑 소공동체모임 식구들이 소식지 「평화마을」을 보여주고 있다.

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