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유박해 순교자들 (29) 김건순 요사팟

김길수 교수(전 대구가톨릭대학 교수)
입력일 2001-09-30 수정일 2001-09-30 발행일 2001-09-30 제 226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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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주체인 노론가문 출신
당파 초월한 진리의 증거자
남위한 희사는 즐기며 자신에게는 매우 검소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계급사회였다. 그런데 천주교는 이 신분과 계층을 넘어서 양반과 평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순교자가 나와 하느님 진리의 보편성을 이 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시 천주교를 박해했던 당파인 노론(老論)의 가문에서도 증거자가 나와 참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만인 모두의 것임을 알게 해주고 있다.

김건순(金建淳, 1775~1801년) 요사팟은 노론대가의 자손인데, 종가집안의 양자가 되어감으로서 벼슬과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노론 안동 김씨 집안인 그의 종가는 경기도 여주에 있었다. 종가에는 선조인 상헌(尙憲)이 나라에 큰공이 있었으므로 대대로 벼슬을 이어받아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집안이 되었다. 그는 나면서부터 영리하고 특이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아홉 살 때에 죽지 않는 길을 열어 준다는 노자의 선도(仙道)를 배울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이 무렵 글방 훈장에게 논어를 배웠는데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훈장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면 멀리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고,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면 공경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인데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으니 훈장이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북경의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쓴 천주교 입문서가 있었는데, 김건순은 열두 살 때에 이 책을 즐겨 읽고 천당지옥과 그 존재의 필요성을 논하고 또한 그 책에서 다루어진 여러 가지 다른 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대신의 작위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커가면서 그는 학문을 광범하게 하였으니 경서, 역사, 불교와 노자의 도리, 의술, 음양서, 병서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르던 중 그의 재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양부의 장례를 치름에 있어 상복(喪服)은 송(宋)나라 제도를 그대로 따라 써서 옛날 법을 많이 잃었었는데 이것을 바로 잡아 시행하였다. 이 때 권철신에게 문의하여 어떤 예식들이 경서에 근거를 두지 않았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속된 선비들이 풍습을 어기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맹렬히 힐책하였다. 김건순은 즉시 글을 지어 대답하였는데 그 인용한 근거가 매우 넓고도 흡족하고 문장이 유창하여 당대 제일가는 학자 이가환이 보고서 감탄하여, 『나는 도저히 바라다보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이 일로 그의 재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건순은 평소 집에 있을 때에는 성격이 원만했고 효성이 두터웠으며 성실하고 너그러워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집안이 부유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을 위해 희사하는 데에 즐겨 썼으며, 자기 자신을 위한 것에는 아주 필요한 것밖에 쓰지 않아 매우 검소하였다. 그가 나들이로 서울에 갈 때면 그의 집 앞에 교군과 말몰이꾼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든지 한번이라도 김건순을 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우리가 그의 인품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때까지도 김건순은 천주교에 대해 극히 간접적으로 듣고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이중배 등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북경에 가서 서양학자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많이 얻어다가 전파할 계획을 세웠었다고 한다. 이 때 천주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인(南人)들이었으며 자신은 노론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천주교를 부러워하고 진리를 사모함이 대단했지만 들어갈 길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시골 교우로 인해 미카엘 대천사의 신상을 얻어 보고, 천주교가 술법(術法)과 서로 통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강이천이란 사람과 함께 술법에 종사하게 되었다. 강이천은 소북(小北)의 선비로 심성이 단정치 못하여 이 나라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장차 소란해지면 이 술법을 배워서 기회를 타 정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김건순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와 교제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교리를 올바르게 연구하려는 진실한 원의를 가졌던 김건순은 그 집안이 속해 있는 노론에는 고명한 신자가 없음을 알고, 마침내 남인 집안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하고 권철신 암브로시오에게 사람을 보내 종교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를 청했다. 권철신은 즉시 동의했다. 그러나 두 집안의 세습적 적대관계로 인해 공공연하게 만날 수가 없어서 김건순은 밤에 남몰래 권철신의 집을 찾아갔다.

처음 몇 차례 만남에서 그는 하느님의 존재와 삼위일체의 신비를 쉽게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강생의 신비에 대한 교리를 듣고는 완전히 낙담하고 실망하여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벼락을 맞던지 어떤 천벌을 받아 죽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여러 날 동안 권철신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하늘이 천벌을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권철신의 집으로 가서 연구를 시작했다. 성령의 은총이 그를 감쌌을까? 그는 자신의 이성을 신앙에 굴복시키며, 자기가 졌다고 고백하고는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김길수 교수(전 대구가톨릭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