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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이 땅에 빛을] (5) 정하상의 벗들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09-03-05 수정일 2009-03-05 발행일 2009-03-08 제 263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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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이 체칠리아, 정정혜 엘리사벳,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조신철 가롤로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 25주년 기획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사제 영입 앞장 
정정혜 엘리사벳(탁희성 작)
유진길 아우구스티노(탁희성 작)
조신철 가롤로(탁희성 작)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시작, 정하상에게도 ‘벗’이 있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어머니 유조이와 동생 정정혜 등 가족은 물론, 북경 왕래의 훌륭한 동행자 유진길과 조신철이 그들이다. 초대 교구장의 임명도, 사제 영입이라는 기쁜 소식도 모두 그들의 작은 힘에서 시작됐다.

가톨릭신문은 김대건 신부의 벗들(2009년 2월 15일자)에 이어 103위 성인에 속한 ‘정하상의 벗들’을 알아본다.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면 조안리에는 마재성지가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양수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마재에 가면 정하상과 어머니 유조이, 여동생 정정혜가 어려움을 겪으며 신앙을 지켜가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신유박해가 일어나 가산이 적몰되자 그들은 아버지 정약종의 고향 마재로 가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그의 가족들은 가문의 비난과 조소, 핍박과 멸시를 받으며 겨우 생계를 꾸려 살아가게 된다. 마재에서 정하상의 벗들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 정하상의 가족

■ 정하상의 어머니, 유조이 체칠리아

유소사로도 많이 알려진 정하상의 어머니 유조이는 정하상의 가장 큰 벗이다.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은 유조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하상·정정혜 남매에게 몰래 구전으로 교리교육을 시키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들 정하상을 북경으로 보낼 때마다 뒷바라지와 함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견뎌내기도 했다.

이러한 유조이의 신심은 순교(기해박해·1839년) 때 빛을 발한다. 고령의 나이에도 230대의 곤장을 맞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기개와 믿음을 보여줬다. 당시 노인은 법으로 참수를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4개월 동안 옥에서 신음하다 11월 23일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79세다.

■ 정하상의 동생, 정정혜 엘리사벳

여동생 정정혜 또한 정하상의 버팀목이 됐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다른 친척들의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천주교를 믿어 집안을 망하게 만들었다며 그의 가족을 적대시하던 몇몇 친척들은 정정혜의 모범을 보고 천주교에 입교하기도 했다.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오빠 정하상이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자 어머니와 함께 상경해 그를 도왔다.

선교사들의 처소를 정성으로 돌보았고 사람들을 권면해 성사를 받도록 했다. 기해박해 당시 어머니와 오빠 정하상과 함께 체포됐다. 포도청에서 7회 심문, 320도의 곤장, 고문 등을 당했으나 신앙을 지켰다. 옥중에서도 기도하고 묵상하며 교우들을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1839년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 당한다.

▶ 정하상의 동료

■ 정하상의 동반자,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 유대철의 아버지다.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접하고 입교했다. 한국교회가 1801년 신유박해로 유일한 성직자인 주문모 신부를 잃자 정하상과 만나 성직자 영입을 도모하게 된다.

그는 역관의 신분을 이용, 북경 교회와의 연락 및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1824년 사신 행차의 일행인 역관 자격으로 북경에 들어가 정하상과 함께 주교와 신부들을 찾아보고 세례성사를 받았다.

1816년부터 15년간을 두고 국금을 어겨가며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애썼으나 당시 중국은 성직자 부족 현상으로 단 한사람의 성직자도 할애하지 못했다. 이 때 그는 정하상과 상의해 로마 교황에 청원하기로 결심한다. 1825년 한문으로 쓴 청원서를 발송하고 조선교회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도 요청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대목구를 맡게 되고 유 파치피코 신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각각 입국하게 된다.

1839년 기해박해 때 가혹한 형벌을 받고 9월 2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정하상의 친구, 조신철 가롤로

1826년 그의 나이 30세경, 정하상과 유진길 등을 알게 되며 교리를 배워 입교한다. 유진길과 함께 북경 천주당을 방문하여 세례·견진·고해·성체성사를 받았다.

동지사(冬至使)의 하급마부로 일하면서 북경 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에 깊이 관여한다. 북경을 왕래하는 교우들을 안내하는 일은 물론 선교사의 입국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는 애주애인하는 마음이 강해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교에도 힘썼다. 특히 고집을 세우며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던 아내도 설득해 입교시켜 선종하게 했다.

기해박해 당시 그는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혹독한 심문을 받았는데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이 집에서 발견됐지만 서양신부들의 은신처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1839년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됐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