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교통경찰관 우성일씨의 하루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09-03-04 수정일 2009-03-04 발행일 2009-03-08 제 263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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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서 늘 기도합니다"
힘든 업무에도 "수고한다"는 격려에 큰 힘 얻어
한때 사제의 길 꿈꿔 … 동료 복음화 위해 노력
성당이 가장 편한 휴식처라고 말하는 우성일씨(앞쪽). 그는 일요일에 근무가 잡히는 날이면 무엇보다 성당에 가지 못해 무척 아쉽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안전센터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우성일씨.
2007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약 21만 건. 이로 인해 6166명이 사망하고, 33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루 평균 575건의 교통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904명이 부상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동차 1만 대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3.1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그 일선에 교통경찰관이 있다.

도로현장에서 불철주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뛰는 교통경찰관 우성일(시몬·54·수원 영통성령본당)씨의 하루를 함께 했다.

# 대한민국 경찰관

서울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교통안전센터.

일요일 오전 10시, 시민들은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10명 남짓한 교통경찰들은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곧 채비를 하고 담당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우성일 팀장의 일과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나마 일요일 오전이라 평일보다는 한결 여유롭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지 현장과 연결되는 무전기 세 대는 절대 놓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1월 24일을 기준으로 올해 서울시 교통 사망자가 벌써 20~30명을 넘었어요. 전년도 대비 70%나 증가한 수치죠.”

그는 “기초적인 교통질서만 지켰더라도 한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라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든 사고원인이 기초적인 질서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많은 사고 원인 중에서도 음주운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요. 음주운전사고는 대형사고와 이어질 확률이 높아 운전자들의 의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평상시에는 팀원들과 함께 현장을 뛰고 있을 우씨는 이 날만큼은 사무실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살폈다. 남대문경찰서가 관할하는 퇴계로, 을지로, 시청 등의 거리상황을 CCTV를 통해 파악하기도 하고 가끔은 서울경찰청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현장의 팀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오늘은 정말 거리가 한산하네요. 평상시에는 이렇게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정신없이 일이 생기곤 하는데 말이죠.”

현장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분명한 운전자의 실수를 단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욕을 퍼붓는 청년, 폭력을 행사하는 40대 시민 등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아버지 또래의 경찰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할 때는 그저 길거리에 주저앉고 싶다고 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기미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의 경우가 많으니, 일하기가 참 어려워요.”

경찰과 관련된 사건이 터지고 나면 시민들의 비난이 더욱 심해진다. 얼마 전에 일어난 용산참사로 인해 시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공무원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그런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칭찬해주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끔 시민들이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 혹은 사탕을 하나 건넬 때에도 힘이 난다고 한다.

“예전에 파출소에 있을 때 길 잃은 할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모셨던 적이 있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한 시민이 ‘어쩜 그렇게 친어머니처럼 대할 수 있냐’고 칭찬해줬어요. 무뚝뚝한 제 성격에도 그런 칭찬을 받으니 힘이 나더라고요.”

오전 시간이 별 사고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점심시간마저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우씨는 한시도 무전기를 손에서 떼어 놓는 법이 없었다. 올해로 34년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뜨거운 순대국밥을 빨리 먹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제는 조급증이 몸에 배어버렸어요.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저희 임무니까요. 저희가 많이 움직일수록 사고도 줄어들지 않겠어요?”

점심식사 후, 도로로 나왔다. 일요일 오후가 되자 조금씩 교통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가 올 듯 말듯 한 쌀쌀한 날씨에도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겨울은 여름에 비하면 양반이죠. 여름에는 덥고 습해서 그런지 더 힘들어요. 일이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와 보면 흰 장갑이 새까맣게 돼있을 정도에요. 아마 교통경찰관들 폐를 보면 매연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 가톨릭신자 경찰관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 사거리의 상황은 원활했다. 명동성당이 지척이었지만 우씨는 갈수가 없었다.

“근무일정 때문에 성당에 못가는 경우가 많다”는 그에게 성당은 그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주간 3일, 야간 3일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그는 피곤하더라도 주간근무가 없는 일요일에는 부인과 함께 미사에 참례한다.

“이상하게 성당에만 다녀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아마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어렸을 때 사제의 길을 꿈꿨다는 그는 남대문경찰서에서도 열심한 신자로 소문나 있다. 우씨의 노력으로 신자가 된 이들도 꽤 있었다. 최근 경찰서 리모델링으로 인해 없어진 경신실에도 자주 찾아가 기도하곤 했다. 근무 중에 기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자녀들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들이 사고를 당한 현장에 가면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교통경찰이다 보니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보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을 때도 많아요. 그런 현장을 보면 마음으로 기도하곤 하죠.”

# 아버지 경찰관

정년을 2년 앞둔 그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도로현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직업정신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우씨의 가족들이었다. 가장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가족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을 정도다.

“아내가 만날 놀려요. 비행기 한번 못 타본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래요. 근데 어쩌겠어요. 국민의 편의를 위해 내 개인의 편의는 희생해야 하는 것이 제 직업인 것을요.”

교통경찰에서 다른 직책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하기 전에는 소방관도 해봤다는 그는 그래도 교통경찰이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1남1녀의 아버지인 그는 의경들에게도 따뜻한 아버지처럼 이것저것을 챙겨준다.

“사실 도로에 나가있다 보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많아요. 저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사고를 한 번도 안 당했지만 아들같은 의경들이 다치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의경들에게 안전에 대해서 매일매일 강조합니다. 그들의 안전이 곧 국민의 안전이니까요.”

국민을 위해 도로에서 살아온 지 34년, 그의 삶은 여전히 도로 위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