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모든 생활 연결된 사제 성소증가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말자
사제직의 성소(聖召)
몇해전까지도 나라를 위해 기꺼이 한몸을 희생으로 바치는 것은 훌륭한 행위이며 이나라의 순진하고 용감한 청년들 중에는 자진하여 전쟁마당에 목숨을 버린 사람도 적지 않았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이런 생각은 한갖 봉건적이라는 한마디로 취급되고 어딘가 비인간적이며 비문명적인 일처럼 오해되기 쉬운 경향(傾向)이 있는 것은 결코 건전한 풍조(風潮)라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가부(可否)의 문제는 제쳐놓고 나라에 일이 생기면 나아가 난(難)을 막는 것은 어느시대 어느 국민에게 있어서도 뛰어난 미덕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위해 제 몸은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는 그리스도교적 선덕(善德)에 직접 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순진한 청년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옛날의 청년들과는 입장(立場)이나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이나 남에게 압박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고 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라를 위한다 하고 인류를 위한다고 하여도 고작해야 이세상뿐인 문제이고 더구나 선의(善意)의 노력이라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남을 위하는 일이 된다는 아무런 보증(保證)도 없이 주관적인 자기만족에 그쳐버리는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와는 반대로 사제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사제들의 활동에는 세상에 관심을 이끄는 화려함은 없으나 인간의 마음을 밑바탕으로부터 뒤흔들고야 마는 힘찬 것이 있으니 사제는 전인류를 위해 그 최고의 목적인 영혼의 구제(救濟)를 위해 온 생애를 바쳐서 천국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언간 없어지고 말 이승의 단순히 一(1)민족 一(1)국가를 위할뿐 아니라 영원을 위하여 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획(收獲)은 전능하신 천주께로부터 보증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위하여 내 몸을 희생한다는 행동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이해할 수 있는 순진한 청년에게는 이러한 의미로 사제직의 의의(意義)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사제에로의 성소(聖召)는 인생 최대의 비의(秘義)인 것이니 이것은 실로 천주의 간택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측에서 볼 때에 성소의 있고 없는 것을 판단할 다소의 죄건은 있는 것이니 그것은 주관적으로는 본인의 확신(確信)과 결심이요 객관적으로는 주교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이 두가지가 다 갖추어졌다고 곧 성소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것은 성소가 있는지 여부를 알아볼 것을 허락받았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은 사제로 서품된 사람을 보고 비로소 그 사람에게 성소가 있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소의 유무를 알아보는 기회를 주는데 있어 교회는 놀라울만큼 관대한데 이것은 인간측에서 천주의 성의(聖意)를 측정할 수 없는 때문이며 또한 되도록이면 많은 유자격자에게 성소의 유무를 알아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신학생들을 보면 학식이나 인격이 사제로서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뜻하지 않은 병이나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세속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고 또는 별로 특수한 특징이 없어도 사제서품까지 순조롭게 나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科程)은 밖으로부터 본 인간적인 판단이나 무리(無理)는 기ᅟᅧᆯ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제로 서품되는 것은 천주께로부터 내리는 一(일)방적인 은총임으로 성소를 알아보는 중도에서 만약 자기에게 성소가 없는 것을 알게되어도 그것은 본인의 악의(惡意)나 결점에서 한 것이 아닌한 죄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소의 유무(有無)를 시험해 보려는 사람이 너무 이 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안배된 길에서 천주의 성의를 찾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 일이라 하겠읍니다.
천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十(10)명의 의인이 있으면 “소도마”와 “고모라”의 타락된 거리는 멸망을 면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읍니다. 사제야말로 이 의인(義人)이 되는 것이니 사제를 지망하는 것은 순진한 청년신자의 보람이라 하겠읍니다.
결론
천주교의 요리는 불과 몇마디 말에 요약(要約)되어 있는 사제직의 존귀함과 중요함에 대하여는 억만마디의 말로 해도 다할 수 없는 것이요 사제는 신자에게 있어서 주일날에 미사성제를 드리고 강론을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요 어린아기가 났을 때나 장례식을 거행해 주는 것만을 맡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제와 신자와의 연결은 일상생활의 구석에까지 이르고 신자의 인생면의 모든 면에 사제는 항상 옆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제직에 대한 이해(理解)를 깊게 해나가는 것 특히 신자의 생활과의 연결을 생각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사실 『참된 가톨릭신자는 사제를 존경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