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가톨릭典禮(전례)의 本質(본질)과 그 使命(사명)

강정우
입력일 2026-09-30 11:07:44 수정일 2026-09-30 11:07:44 발행일 1956-11-18 제 17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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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面(제1면)의 報道(보도)와 같이 『敎皇(교황) 비오 十二世(12세) 在位(재위)中(중)에 있어서의 司牧(사목) 典禮(전례)의 改革(개혁)』이라는 主題(주제)下(하)에 『아씨지』에서 開催(개최)된 『國際司牧典禮會議(국제사목전례회의)』는 가톨릭敎會(교회)의 定式(정식)이며 公開的(공개적)인 欽崇(흠숭)行爲(행위)(主(주)로 미사聖祭(성제)) 긜고 諸(제)聖事(성사)와 聖務日禱(성무일도)를 包含(포함)한 典禮(전례)에 關(관)한 世界的(세계적)이며 敎會史(교회사)에 있어서도 커다란 意義(의의)를 갖는 重大(중대)한 會議(회의)였든 바 同(동) 會議(회의) 席上(석상)에 있어서 禮部聖省(예부성성) 長官(장관) 『치코냐니』 樞機卿(추기경)은 敎會(교회)의 典禮(전례) 意義(의의)와 目的(목적) 및 今次(금차) 會議(회의)의 指向(지향)을 들어 다음과 같은 要旨(요지)로 演說(연설)하였다.

 

典禮(전례)의 意義(의의)와 改革(개혁)의 目的(목적)

① 司牧典禮(사목전례)의 目的(목적)은 正確(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스도를 首班(수반)으로 하는 神秘體(신비체)와 信者(신자)와의 極(극)히 緊密(긴밀)한 一體(일체)를 이루도록 信者(신자)를 印度(인도)함에 있다… 그것은 더욱이 信者(신자)가 司祭(사제)와 한가지로 典禮(전례)에 參與(참여)하도록 信者(신자)를 指導(지도)함에 있다.

 

② 여러가지 典禮改革(전례개혁)의 動機(동기)를 詮索(전색)하여 或(혹)은 그것은 古禮(고례)에의 “노스텔쟈”(鄕愁(향수))라든가 美學的(미학적) 또는 神秘的(신비적)인 動機(동기)에 터전한 一種(일종)의 “로만치시즘”이라든가 過去(과거)의 지나간 일에의 “센치멘타리즘”(感傷主義(감상주의))이 아닌가 하고 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아니 絶代(절대)로 그렇지 않다. 典禮改革(전례개혁)의 가장 主要(주요) 하고 唯一(유일)한 理由(이유)는 信者(신자)로 하여금 참다이 “그리스도의 生涯(생애)”대로 生活(생활)하기를 熱望(열망)함에 있는 것이다.

 

③ 敎皇(교황) 聖下(성하)께서 信者(신자)들로 하여금 훨씬 쉽게 祭台上(제대상)의 犧牲(희생)에, 參與(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또 그들의 『忠誠(충성) 있는 司祭職(사제직)』을 執行(집행)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取(취)하신 方法(방법)으로서 다음 두 가지의 大(대)담한 措置(조치)가 있으니 即(즉) 『저녁미사』와 聖週間(성주간)의 祭式(제식)의 復興(부흥)이다.

 

④ 『저녁미사』에 대하여 처음에는 過(과)하고 新奇(신기)한 것으로 생각혀졌으나 그 司牧上(사목상)의 性格(성격)이 곧 나타나게 되었다. 그後(후)의 經驗(경험)에 의하여 저녁미사는 主日(주일)의 義務(의무)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 또는 대단한 困難(곤란)을 겪지 않고서는 그 義務(의무)를 實行(실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가 證明(증명)되었다.

 

⑤ 聖週間(성주간)의 새로운 儀式(의식)도 司牧上(사목상)의 考慮(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新儀式(신의식)은 信者(신자)의 敬虔性(경건성)을 弱化(약화)시키거나 混亂(혼란)케 하기는 커녕 도리어 讚嘆(찬탄)할 만한 敬虔性(경건성)을 增進(증진)시켰다. 最初(최초)에 新祭式(신제식)에 不贊成(불찬성)인듯 하던 사람들까지도 놀라운 現實(현실)에 直面(직면)하여서는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事實(사실) 그들 自身(자신)이 모든 豫想(예상)을 超越(초월)한 結果(결과)가 發生(발생)한 것을 確認(확인)하고 있다.

 

⑥ 나는 다시금 이 點(점)을 强調(강조)한다. 即(즉) 典禮(전례)의 改革(개혁) 動機(동기)는 非常(비상)히 熱㤠(열열)한 『司牧上(사목상)의 配慮(배려)』에 因(인)한 것으로 단순이 옛 儀式(의식)을 復舊(복구)하려는 所願(소원)에서 된 것은 아니다.

 

아씨지會議(회의)의 使命(사명)

다음에 『치꼬냐니』 樞機卿(추기경)은 敎皇(교황) 비오 十二世(12세)의 典禮(전례)에 關(관)한 回勅(회칙) 『메디아토르 데이』의 重要性(중요성)을 强調(강조)하여 그것을 典禮(전례)의 大憲章(대헌장)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一, 典禮學者(전례학자)들이 『아씨지』에 모인 것은 여러가지 問題(문제)를 硏究(연구)하여 各種(각종) 意見(의견)을 提供(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어버이요 敎師(교사)』로서 쉴새없이 恒常(항상) 活動(활동)하고 계씬 敎皇(교황) 비오 十二世(12세)가 發(발)하신 律法(율법)과 命令(명령)의 意義(의의)와 價値(가치)를 强調(강조)하기 위함이다.

 

二, 그러므로 이번 會議(회의)에서는 本來(본래) 『討議(토의)』라고 일커러지는 것은 行(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會議(회의)의 分明(분명)히 階層的(계층적)인 性格(성격)은 討議(토의)를 許容(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會議(회의)를 機會(기회)로 하여 諸種(제종)의 委員會(위원회)가 聖典禮(성전례)에 關聯(관련)되는 여러가지 問題(문제)를 檢討(검토)할 수 있는 可能性(가능성)이 전연 廢址(폐지)된다는 것은 아니다.

 

라딘語(어)의 關係(관계)

그리고 『치꼬냐니』 卿(경)은 라딘語(어)야 말로 『敎會(교회)의 普遍性(보편성)과 統一(통일)의 標印(표인)』이라고 賞讚(상찬)하고 나서 信者(신자)가 라딘語(어)의 聖典禮(성전례)를 理解(이해) 못하드라도 그것은 必(필)히 自國語(자국어)(地方固有語(지방고유어))의 代用(대용)을 必要(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一, 라띤語(어)는 單只(단지) 하나의 『傳達手段(전달수단)』일뿐이 아니라 그것은 二千年(2천년)의 文明(문명)과 文化(문화)를 우리들이 理解(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라딘語(어)의 正確性(정확성)은 神學者(신학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二, 現代(현대)의 사람들은 라딘語(어)의 聖典禮(성전례)를 過去(과거) 數世紀間(수세기간)에 있어서와 同一(동일)하게 理解(이해) 못할 것은 事實(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自國語(자국어)의 代用(대용)을 必要(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聖典禮(성전례)는 憂愁(우수)한 飜譯手段(번역수단)에 依(의)하여 理解(이해)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三, 信者(신자)는 司祭(사제)가 祭台(제대)에서 獨唱(독창)하는 모든 것을 自己(자기)의 典禮書(전례서) 속에서 읽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主張(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것은 그릇된 일이다. 왜냐하면 司祭(사제)는 司祭(사제)대로 典禮(전례)上(상)의 任務(임무)를 實行(실행)함에 있어 獨自(독자)의 役割(역할)을 가지고 있고 한편 信者(신자)는 信者(신자)로서의 役割(역할)을 갖고 있음으로서이다. 그럼에도 不拘(불구)하고 信者(신자)는 司祭(사제)와 마찬가지로 미사聖祭(성제)에 參與(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司祭(사제)는 信者(신자)가 典禮(전례)에 參與(참여)하여 또한 典禮(전례)를 理解(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賢明(현명)하고 끊임없는 努力(노력)으로 信者(신자)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聖務日禱書(성무일도서)의 改革(개혁)이 必要(필요)

또한 『치꼬냐니』 樞機卿(추기경)은 이 會議(회의) 席上(석상)의 演說(연설) 中(중)에서 聖務日禱(성무일도)서(司祭(사제)가 每日(매일) 義務(의무)로 讀(독)념하는 諸祈禱文(제기도문)을 受祿(수록)한 책)가 改革(개혁)되려 하고 있다는 것을 言明(언명)하여 聖務日禱(성무일도)서와 미사 典禮(전례)서의 簡易化(간이화)(一九五六年(1956년) 一月(1월) 一日(1일)부터 施行(시행))는 아마 聖務日禱(성무일도)서의 改編(개편)의 第一步(제1보)였다고 말하였다.

 

더욱이 敎會(교회) 內(내)의 여러 階統(계통)에서는 더 徹底(철저)한 聖務日禱(성무일도)서의 改革(개혁)을 期待(기대)하였었다. 이 簡易化(간이화)에 관한 規則(규칙)이 發表(발표)되었을 때에 禮部聖省(예부성성)에서는 典禮(전례)서의 發行者(발행자)에 대하여 聖務日禱(성무일도)서와 미사典(전)서를 發行(발행)할 경우에는 新訂(신정)을 하지 않도록 警告(경고)하였던 것이니 이 事實(사실)은 더한층 改革(개혁)이 계속 行(행)해지리라는 것을 暗示(암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