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주제여서 쓸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지만, 막상 35년간 게으른 조각가로 살아온 지난날 특별히 내세울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간도 나를 위해 마련해 두신 하느님의 조용한 계획이었음을 깨닫는다.
30여 년간 가톨릭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조각가였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고 살았을 것이다. 학원 일이 커질수록 물욕도 커졌다. 그러면서 고요한 내면의 삶과는 자꾸 멀어지고 있었다.
수백 명의 아이가 학원을 드나들자 아이들의 안전이 염려돼 성당 레지오 마리애에도 가입했다. 봉사하려는 마음보다는 내 이익을 위한 이기심이 더 컸다.
어느 날 나와 가까운 학부모가 책을 들고 찾아왔다. 「들숨날숨」이라는, 가톨릭 신부님이 펴내는 잡지였다. 그는 1년 치 구독료까지 내주며 그림을 그리는 신부님을 소개해 주었다.
전시장에서 본 신부님의 작품은 뜻밖이었다. 그림이나 조각을 하는 다른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작품과는 많이 달랐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추상표현주의의 강렬함이 드러났고 작품성도 뛰어났다. 마음 한구석에서 늘 초라하다고 느껴 왔던 성미술과는 달리 개성이 두드러지는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유럽에서 공부하셔서인지 서구적인 세련미가 느껴졌고, 사용한 재료도 남달라 보였다.
「들숨날숨」에 실린 글도 내 마음을 끌었다. 어느 해인가 부산에서 영성미술 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했다. 쉼 없이 이어지는 작업 일정은 일반적인 피정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가라앉아 있던 창작 열정을 되살리는 강의와 실습이 이어졌다. 주로 미술을 전공한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타고난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곤 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붓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들의 솜씨를 보며, 손재주도 뛰어나지 않은 내가 미술을 한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빛나는 재능을 발견하고 바라보는 것 역시 큰 즐거움임을 영성미술 캠프에서 알게 됐다.
재능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잘 가꾸어 발휘하는 것이 마땅하다. 캠프가 끝난 뒤 그곳에서 만난 대학 선배님과 함께 미술 동아리를 만들고 실습 모임을 이어 갔다. 신부님께서 주제를 정해 주시면 여러 연령대의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 와 발표하고, 서로 감상하며 토론했다. 대학 시절보다 더 큰 창작 의욕을 일깨운,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이후 신부님께서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면서 우리 모임은 중단됐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 삶에 주어진 큰 기회였음을 기억한다.
하느님께서는 선물을 틈틈이 준비해 두셨다가 우리 앞에 펼쳐 보이신다. 모르고 지나쳤던 일의 의미를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닫게 하신다. 그 섬세하고 치밀한 계획에 놀라게 된다.
그러니 불평하고 툴툴거릴 시간이 없다. 나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을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늘 준비해야 한다.
들숨과 날숨이 맞물려 이어지듯, 우리는 하느님의 숨결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

글 _ 추명희 제르트루다(수원교구 가톨릭미술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