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共産主義(공산주의)에 答(답)한다 (14)

강정우
입력일 2026-09-02 11:48:22 수정일 2026-09-02 11:48:22 발행일 1955-12-25 제 16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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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憎惡(증오)』의 倫理(윤리)와 『사랑』의 倫理(윤리)

都大體(도대체) 共産主義(공산주의)의 世界(세계)에서 『사랑』이란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저들의 말하는 사랑은 바로 性行爲(성행위)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맑시스트의 語彙(어휘)로써 사랑 云云(운운)은 없는 말이다.

 

나는 일찍 二十年間(20년간)의 黨員生活(당원생활)에서 公式的(공식적)인 政見(정견) 或(혹)은 黨員(당원) 相互(상호)의 日常(일상) 會話(회화)에서도 사랑이란 말을 듣지 못하였다. 내 自身(자신) 그런 말을 쓰지 않았고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 말을 쓰지 않았고 演說(연설)같은 데서 써보지도 못하였다. 오즉 『憎惡(증오)』이란 말을 말끝마다 빼지 않았다. 『우리는 健全(건전)하게 憎惡(증오)의 念(념)을 갖이고 있는 것이 必要(필요)하다』라고 하였으며 이에 準(준)하는 말마디를 造作(조작)함으로써 우리의 新社會秩序(신사회질서)와 呼吸(호흡)을 같이한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이로서 階級(계급)의 慘酷(참혹)한 處理(처리)를 意識(의식)케코저 하였고 階級間(계급간)의 軋轢(알력)으로서 內戰(내전)의 勝算(승산)을 따질 수 있으며 우리가 믿을 것은 오로지 이 憎惡(증오)의 情(정) 안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나치스」도 이와같았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거니와 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저들 역시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들과 같이 憎惡(증오)로 마련된 敵愾心(적개심)으로 新秩序(신질서)를 세우고저 하였다. 그러나 그 精神(정신)은 「유우롭」의 수많은 都邑(도읍)을 滅亡(멸망)하였고 또 「베르린」 自体(자체)까지 불태웠던 것이 아니였더냐!

 

그 當時(당시) 우리 唐院(당원)들의 머리로서는 階級間(계급간)의 憎惡(증오)는 地上(지상)에서의 가장 力學的(역학적)인 對立(대립)이라고 했던 것이며 이로서 革命(혁명)은 修行(수행)되었고 前塵(전진)하고 또 前塵(전진)할 수 있었으니 우리는 現狀(현상)을 보살펴 反立(반립)되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불태워버림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未來(미래)의 꿈은 實現(실현)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憎惡(증오)는 산산히 캐여질 수 있는 武器(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였다. 쏘비엩 共和國(공화국) 內(내)의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의 三分之二(3분지2)까지는 黨(당)의 미움을 받고 있고 또 서로의 憎惡(증오)로서 이루어져 있음으로 어느때 한번은 「동무」의 銃彈(총탄)을 받어야 하는 것이었다.

 

저들의 憎惡(증오)는 또한 力學的(역학적)인 것이라고 했으니 그들다운 力學(역학)의 그것은 우리 面前(면전)에서 尸位(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捏造(날조)된 事實(사실)도 그것이 信念(신념)이었기 때문에 建設(건설)의 重力(중력)이 되었으며 이로서 어떠한 幸福(행복)에의 構成体(구성체)로서의 尸位(시위)를 하게된 것이다.

 

나는 이같은 組立(조립)된 構成體(구성체)로서의 『憎惡(증오)』로 말미아마 人類(인류)는 世紀的(세기적)인 病(병)을 앓게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더욱히 우리 世代(세대)에 와서 이는 온갖 空間(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空間(공간)이 생기게 되고 또 커가는 곳에 채워지는 그 憎惡心(증오심)만을 利用(이용)해도 共産主義(공산주의)는 서로 나갈 수 있는 素地(소지)를 장만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것에 無知(무지)한 곳에는 「레에닌」을 찾을 必要(필요)도 없이 스스로 共産主義(공산주의)의 活路(활로)는 열려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到處(도처)에서 더 많은 「앗시시」의 聖(성) 「프랑시스」여 나오라고 외치고 싶다. 저는 敎會(교회) 안에 어떠한 新世界(신세계)라도 처이길 수 있는 사랑의 力學的(역학적) 能力(능력)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英雄的(영웅적)인 그 무엇도 아니요 至今(지금) 떠러지고 不足(부족)한데를 기워가기에 至極(지극)히 必要(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오늘과 같은 危機(위기)는 없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또 하편으로 오늘과 같은 好機(호기)는 다시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왜?

 

맑이스트 理念(이념)의 그 僞善(위선)이 들어나고 있는 때를 맞어 우리는 양팔을 벌려 時利(시리)를 捕捉(포착)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탓으로 때를 노친다면 저들은 그 두러진 곳을 修正(수정)하고 또다시 이러서게 될 것임으로 우리는 이때를 가저 한 世代(세대) 한 國家(국가) 위에 여러차례 있을 수 없는 好機(호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그라스 하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