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人(세인)이 記憶(기억)에 아직도 새로운 一九五○年(1950년) 十二月(12월) 十一(10일)의 咸興撤收作戰(함흥철수작전) 時(시) 一萬名(1만명)의 南下(남하) 避難民(피난민)을 武士(무사)히 後送(후송)한 것으로 功名(공명)을 날린 船長(선장) 「레오날드 라루」 氏(씨)(當年(당년) 四一歲(41세))가 「쎄인트 포올」에 있는 聖(성) 베네딕도 修道院(수도원)에 入修(입수)하고 「마리누스」라는 修道(수도)명으로 平修士(평수사)가 되었다 한다.
當時(당시)의 戰況(전황)으로 보아 이 避難民(피난민) 後送(후송)이 極難(극난)한 條件(조건)이 許多(허다)하였으므로 軍當局(군당국)은 氏(씨)의 功績(공적)을 卽時(즉시) 發表(발표)하지 않고 數週間(수주간)의 調査期間(조사기간)을 두었다는 것은 그間(간)의 事情(사정)을 더욱 크게 立證(입증)하는 것이며 當時(당시) 그 劇的(극적)인 光境(광경)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라루」 氏(씨)는 그 後(후) 이것이 한 動機(동기)가 되어 人生問題(인생문제)이 對(대)해 다시 크게 느낀 바 있어 보다 높은 삶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