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理念(이념)은 人格(인격)과 自由(자유)의 源泉(원천)!

강정우
입력일 2026-09-02 11:48:23 수정일 2026-09-02 11:48:23 발행일 1955-12-25 제 162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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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신앙)은 理念(이념)과 힘을 우리에게 준다

【미라노 發(발) NC】 『이탈리아 그리스도敎(교) 勞動者協會(노동자협회)』 創立(창립) 十週年(10주년)을 記念(기념)하여 數千名(수천명)의 가톨릭 勞動者(노동자)가 바레-세州(주)의 사구로 山(산)에 올라갔는데 미라노의 죠반니 몬데이니 大主敎(대주교)(前(전) 바티깐 國務省長官(국무성장관) 代行(대행))는 山上(산상)의 (經堂(경당))에서 그들을 위해 미사를 올린 뒤에 說敎(설교)를 行(행)했는데 『어느 누구 한사람이라도 빵과 집과 衣類(의류)와 일터를 缺(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여 非常(비상)한 喝采(갈채)를 받았는데 『그리스도敎(교) 勞動者(노동자)는 무엇을 意味(의미)하는가』라는 質問(질문)을 主題(주제)로 다음같이 말하였다.

 

◇ 이 質問(질문)이 重要(중요)한 緣由(연유)는 그것에 대한 解答(해답)이 반드시 明瞭(명료)하거나 充分(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質問(질문)에 대해서 諸君(제군)은 이렇게 答(답)해야 할 것이다.

 

『나의 信仰(신앙)은 나에게 理念(이념)은 준다. 나의 宗敎(종교)는 나에게 敎義(교의)와 諸原理(제원리)를 그리고 光明(광명)을 附與(부여)한다. 빛 없이는 사람은 安全(안전)하게 거를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 理念(이념)은 아무것도 아닌듯이 생각하나 全部(전부)인 것이다. 사람을 이끄는 것은 理念(이념)이다. 事物(사물)에 對(대)한 理解(이해)와 사람이 到達(도달)해야 할 目標(목표)에의 理解(이해)를 주는 것은 理念(이념)이다. 사람을 鬪士(투사)로 하는 것은 理念(이념)이다. 理念(이념) 없는 사람은 人格(인격) 없는 사람이다. 理念(이념)이야말로 自由(자유)의 根源(근원)이다.

 

『眞理(진리)는 그대를 自由(자유)롭게 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어떤 理念(이념)을 위해서 살고 싸우며 죽는다. 現今(현금)에도 史的唯物論(사적유물론)이 가끔 웨처지는 것을 들음은 奇妙(기묘)하다.

 

◇ 그런데 우리의 信仰(신앙)은 우리에게 理念(이념)과 힘을 준다. 우리의 信仰(신앙)은 人生(인생) · 人間(인간) 自由(자유) · 正義(정의) · 責任(책임) · 眞僞(진위) · 仙樂(선악) · 來世(내세) 等(등)에 關(관)한 理念(이념)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의 信仰(신앙)은 智慧(지혜)와 光明(광명)을 준다. 그것은 또한 行動(행동) · 苦難(고난) · 歡喜(환희) · 希望(희망)의 모든 理由(이유)를 준다. 더욱이 그것은 보다 높은 生活(생활)의 開拓(개척)과 또한 潛在的(잠재적)인 모든 것을 준다.

 

그리스도敎徒(교도)이라는 것은 한 兄弟(형제)가 되는 것을 意味(의미)하며 兄弟性(형제성)에 대한 一切(일절)의 侵害(침해)는 罪惡(죄악)임으로서 是正(시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 그리스도교道(도)이라는 것은 隷從(예종)에서 自由(자유)인 것 抑壓(억압) · 飢餓(기아) · 恐怖(공포) · 에서 自由(자유)인 것을 意味(의미)한다. 그리고 諸君(제군)은 그러한 自由(자유)를 賦與(부여)받을 權利(권리)가 있는 것이다.

 

몬데이니 大主敎(대주교)는 最後(최후)에 『愛德(애덕)』을 熱㤠(열열)히 呼訴(호소)하면서 다음같이 말했다.

 

◇ 愛德(애덕)만이 善意(선의)와 사랑과 兄弟愛(형제애)와 平和(평화)를 싸올리는 人間關係(인간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愛德(애덕)은 우리의 人生哲學(인생철학)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愛德(애덕)의 實行(실행)에서 새로운 人間的(인간적)인 社會關係(사회관계)가 驚異的(경이적)으로 生起(생기)될 수 있는 것이다.

 

◇ 諸君(제군)의 宗敎(종교)는 이 宗敎(종교)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諸君(제군)을 또렷하게 區別(구별)하는데 그러나 이것은 諸君(제군)이 이웃을 찾아 나가며 그들을 諸君(제군)의 新芽(신아)과 社會觀(사회관)에 끌어 드리는 것을 禁(금)하지는 않는다. 諸君(제군)은 善道(선도)를 걷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諸君(제군)을 부르려고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反對(반대)로 諸君(제군)便(편)에서야말로 諸君(제군)의 것은 善道(선도)에로 달려오도록 그들에게 손을 뻐칠 것이다.

 

그리고 몬데이니 大主敎(대주교)는 聽衆(청중)의 注意(주의)를 『그리스도敎(교) 勞動運動(노동운동)의 將來(장래)의 目標(목표)에 기우리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같이 말했다.

 

◇ 어제까지는 勞資關係(노자관계)는 거이 一方的(일방적)인 것이었다. 곧 使用者(사용자)가 命令(명령)을 내리고 勞動者(노동자)가 그것을 實行(실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勞資關係(노자관계)는 双方的(쌍방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곧 勞資(노자)가 서로 上帶枋(상대방)의 尊嚴(존엄)을 完全(완전)히 認定(인정)하면서 勞動者(노동자) 自身(자신)도 企業(기업)의 全般的(전반적) 利益(이익)을 위해 參劃(참획)하도록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 現在(현재) 政治(정치)와 經濟(경제)의 總指導(총지도)라는 것이 非常(비상)히 和劑(화제)에 오르고 있다. 果然(과연) 그렇다면 諸君(제군)으로서는 “어느 누구일지라도 빵과 머리 위의 집웅과 衣類(의류)와 일터를 缺(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諸君(제군) 自身(자신)의 提案(제안)으로 해서 可(가)한 것이다. 政治(정치) 經濟(경제)를 指導(지도)하는 立場(입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名譽(명예)와 利益(이익)에 걸어서라도 이것이 實現(실현)되도록 모든 努力(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