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敎(선교)의 가톨릭 액슌
『모든 반죽 속에 빵씨(酵母(효모))를 섞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共同體(공동체) 속에 大衆(대중)을 獲得(획득)하는 組織(조직)된 小數者(소수자)의 크릎이 없으면 안된다.
(H. 고단 師(사))
現代人(현대인)의 不信仰(불신앙) 文明(문명)의 世俗(세속)화의 根本的(근본적) 原因(원인)의 하나는 社會(사회)의 原子化(원자화)(Atomization). 사람들 사이에 連帶性(연대성)의 崩壞(붕괴)이다. 社會(사회)의 政治的(정치적)] 經濟的(경제적) 不合理(불합리)는 그 原因(원인)의 一端(일단)은 될 수 있을 망정 결코 그 모든 根本的(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現代社會(현대사회)의 많은 道德的(도덕적) 墮落(타락)과 여러가지 社會惡(사회악)은 사람들의 人間存在(인간존재)에서 不可缺(불가결)한 基本的(기본적)인 生活共同體(생활공동체)를 喪失(상실)케 하고 非人間化(비인간화)하며 非精神化(비정신화)하고 原子化(원자화)한 社會環境(사회환경)에 몰아넣게 함에서 생긴 것이다.
앞서 『가톨릭 액숀은 環境聖化(환경성화)의 課業(과업)이라』 말했거니와 이제 그것을 더욱 積極的(적극적)으로는 그리스도敎的(교적) 共同体(공동체)의 建設(건설)의 事業(사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가톨릭 액숀은 한갓 個人(개인)으로 還元(환원)된 社會(사회) 속에 그 零細化(영세화)에 對抗(대항)하여 神秘体的(신비체적) 共同体(공동체)를 建設(건설)하기에 指向(지향)하는 것이 아니여서는 안된다.
그러한 그리스도敎(교) 共同体(공동체)는 或(혹)은 自然的(자연적) 環境(환경) 밖에 或(혹)은 그 自体(자체) 속에서 形成(형성)될 수 있다. 그렇지마는 오늘 社會(사회)가 그리스도敎化(교화) 할 수 있는 것은 後者(후자)의 方法(방법)에 依(의)해서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推理(추리)하건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現代社會(현대사회)는 一定(일정)한 環境(환경)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精神(정신)의 規格(규격)을 만들어 내어 小數(소수)의 例外(예외)를 除外(제외)하고 一般(일반) 大衆(대중)은 온전히 非(비)그리스도敎的(교적)인 世俗(세속)화된 生活環境(생활환경)의 制約下(제약하)에 스스로 그 集合体(집합체)의 한갓 一部分(일부분)으로 生活(생활)을 不可避(불가피)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그들의 環境(환경) 自体(자체) 속에 들어가기를 避(피)하고 다만 그 속에서부터 小數(소수)의 選良(선량)을 얻으며 自然的(자연적) 生活環境(생활환경) 밖에 있어서 이와 온전히 生活樣式(생활양식)과 理念(이념)의 差異(차이) 되는 그리스도者(자)만의 社會(사회)를 맞임으로써 自足(자족)한다면 저 尨大(방대)한 大衆(대중)은 決(결)코 그리스도의 福音(복음)에 接近(접근)하는 機會(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며 世界(세계)는 더욱 더욱 非(비)그리스도敎化(교화) 할 것이다.
또한 大衆(대중)의 生活環境(생활환경) 自体(자체)에는 下等(하등)의 觀心(관심)을 기우림이 없다면 그 속에서 얼마간의 改宗者(개종자)들 發見(발견)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從來(종래)의 生活樣式(생활양식)과 判異(판이)한 生活(생활)에 들어가기 않으면 안되는 困難(곤란)에 直面(직면)할 것이다.
우리는 二十世紀(20세기)의 오늘 그리스도의 福音(복음)이 결코 全世界(전세계)에 宣布(선포)되고 있지 않은 事實(사실)을 直視(직시)하고 反省(반성)하며 大衆(대중)의 自然的(자연적) 生活環境(생활환경) 自身(자신) 속에 그리스도敎的(교적) 生活共同体(생활공동체)가 建立(건립)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狹義(협의)의 그리스도者的(자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은 쉽겠지마는 그것은 決(결)코 堅實(견실)한 所爲(소위)는 아니다. 보다 넓은 人間的(인간적) 生存(생존)에 必要(필요)한 基本的(기본적) 環境(환경) 속에 救世(구세)의 神秘(신비)를 聖化(성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理想(이상)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映畵界(영화계)의 한 모통이에 工場(공장)의 어떤 直腸(직장)에 事務所(사무소)의 한 구석에 學生社會(학생사회)에 家庭(가정)에 모든 職業社會(직업사회)에 生命(생명)의 빵 酵母(효모)가 가톨릭 액숀의 鬪士(투사)에 依(의)해서 全波(전파)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 앞에 展開(전개)되어 있는 廣大(광대)한 非(비)그리스도敎的(교적) 혹은 離敎(이교)적 社會(사회)나 그 文明(문명)에 대해서 우리가 狹小(협소)한 그리스도者(자)의 섬나라(島國(도국))에 孤立(고립)하여 無爲(무위)하게 지낸다는 것이나 또는 한갓 밖으로부터 攻擊(공격)하고 破壞(파괴)하려는 것 亦是(역시) 우리가 取(취)할 態度(태도)가 아니다.
거룩한 뜻(聖旨(성지))이 地上(지상)에서 實現(실현)되기를 祈禱(기도)하는 者(자)라면 반드시 罪惡(죄악)이 되지 않는 데까지 非(비)그리스도者(자)와의 生活(생활)을 함께하고 共感的(공감적) 精神(정신)에 살며 더욱 積極的(적극적)으로 福音(복음)을 宣示(선시)함에 依(의)해서 世俗(세속)주의의 驅逐(구축)과 環境聖化(환경성화)에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反目(반목)이 있는 곳에 사랑을 鼓舞(고무)하고 怨恨(원한)이 서린 곳에 容恕(용서)를 베풀며 分裂(분열)과 不義(불의)가 있는 곳에 一致(일치)를 더어주고 疑惑(의혹)있는 곳에 믿뿜(신)을 이끌며 誤謬(오류)있는 곳에 眞理(진리)를 비치고 失心(실심)한 곳에 希望(희망)을 북도으며 슬픔에 젖은 곳에 歡喜(환희)를 끼쳐주고 不義(불의)가 깃드린 곳에 正義(정의)를 비추어 주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