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것과 확실치 못한 것 죽검과 그 시일에 대하여
이차대전시에 미국 보병(步兵) 제七(7)사단(師團)에 종군하여 다섯차례나 남태평양(南太平洋) 도서(島嶼) 공격작전에 참가하여 은성(銀星) 및 동성(銅星) 훈장을 받았으며 어떤 때는 하로에 六十(60)명이라는 많은 전사하는 병사들에게 종부성사를 준 것으로써 유명한 『십자가의 성 바오로』 수도원장으로 계시던 「줄리우스 벗세」 신부는 위암(胃癌)으로 「칸사스」주 「팰손」시의 자선병원(慈善病院)에서 임종(臨終)을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서 왕방(往訪)한 신문기자들에게 『나는 새로운 임지(任地)로 가는 기분이다』고 말한 다음
『내가 암(癌)으로 죽게 되는 것은 나의 과분(過分)한 특권(特權)이다. 그것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심장(心臟)마비 같은 것이 였다면 아무 준비도 없었을 것을……』
하시면서 태연하게 미소(微笑)를 지어보였다 합니다.
이 신부님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조금도 불안(不安)한 것이 아니며 다만 죽는 시간의 불확실(不確實)한 그것이 사람을 불안케 하는 것이다』고 하였읍니다.
『내가 전투지대(戰鬪地帶)에서 병사들의 죽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자기들이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認識)했을 때는 모든 불안(不安)은 사라지고 평화스러웠다. 그러므로 죽음이 확실하게 자기 앞에 찾아왔다고 생각될 때는 아무 불안도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영원한 고향(故鄕)은 천국(天國)인데 여기에 임(臨)하여 그곳으로 가기를 주저할 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그렇습니다 육신의 주검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오 실로 둘려운 것은 구령(救靈)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가장 중대한 결정이 나려지는 죽는 그순간의 우리의 영혼상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검을 피하려 힘쓰느니 보다 죄를 삼금이 났다. 네가 오늘 준비를 아니하였으면 내일에는 어찌하겠느냐?』(준주성범)
『내일이란 날은 일정한 것이 못되나니 어찌 내일이 꼭 네것이 될 줄을 알겠느냐』(야고버 四 · 十四(4 · 14))
이러므로 임종 때에 어떠한 모양으로 있기를 원하는 그대로 지금 사는 동안에 힘쓰는 자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지혜로운 자입니까
『너희는 날과 시를 알지 못한즉 깨여 지키라』(마두 二五장 十三절(25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