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月一日(10월 1일)부터 末日(말일)까지 一個月間(1개월간)에 걸처 全國的(전국적)으로 同胞愛發揚週間(동포애발양주간)이 實施(실시)되고 多彩(다채)한 프로의 各種行事(각종행사)가 準備(준비)되고 있다,
일찌기 伊太利(이태리)의 롬바르디 神父(신부)는 그의 「사랑의 十字軍(십자군)」 第一聲(제1성)에서 「여러분들의 집에서 저녁 食事(식사)를 한 끼 굶었다고 하면 그것은 한 悲劇(비극)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녁食事(식사)뿐 아니라 盡食(진식)까지도 먹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또는 하루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은 없는가……」
「이 戰爭(전쟁)으로 人命(인명)과 財産(재산)과 貴重(귀중)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損失(손실)은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져 버린 것이다」고 말했음같이 戰亂(전란) 數年(수년)을 겪어오는 동안 우리의 心情(심정)은 거칠대로 거칠어졌었고 人情(인정)과 눈물과 피가 涸渴(학갈)해 버린 砂漠(사막)과 같은 殺風景(살풍경)을 展示(전시)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社會(사회)에 무엇보다 앞선 問題(문제)는 이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불을 붙이 愛德心(애덕심)을 蘇生(소생)케 하는 것이며 同胞愛發揚週間(동포애발양주간)의 意義(의의)는 實(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忍耐(인내)한다」하였다 우리 겨레가 現在(현재) 逢着(봉착)한 災難(재난)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傷處(상처)를 서로 慰撫(위무)하며 서로 도우면서 이 試鍊(시련)의 時機(시기)를 甘耐(감내)해 가는 것도 또한 앞으로 再建(재건)에 있어서의 모든 苦楚(고초)도 오지 이 愛德(애덕)으로 連結(연결)된 마음과 마음의 鞏固(공고)한 結束(결속)으로써만 能(능)히 이 難局(난국)을 突破(돌파)해 나갈 수 있는 唯一(유일)의 힘이 되는 것임은 이제 再三贅言(재삼췌언)을 要(요)치 않는 바이다, 그러나 쉽게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에는 順序(순서)가 있는 것이며 이 사당의 順序(순서)를 바꾸는 데 있어 人間社會(인간사회)의 罪惡(죄악)이 發生(발생)되고 悲劇(비극)이 招來(초래)되는 것이다
兄弟愛(형제애)라든가 同胞愛(동포애)라든가 愛國心(애국심)이라든가 하는 이 모든 사랑의 그 終極(종극)의 歸着点(귀착점)이 眞善美(진선미)이며 사랑 自体(자체)이신 天主(천주)께로 連結(연결)됨으로서 비로소 生命(생명)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런 아해 중 하나를 대접하면 곧 나를 대접함이요…」(말구 九·三六(9·36))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따른 友邦國民(우방국민)의 愛德(애덕)의 그 마음이 救護物資(구호물자)가 되어 오늘날 凄慘(처참)한 戰亂(전란)을 겪고 있음에도 不拘(불구)하고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우리를 救(구)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에 보이는 네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눈에 뵈이지 않는 천주를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하신 聖經(성경) 말씀은 天主(천주)께 대한 사랑의 表示(표시) 그것이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로서 同胞愛發揚週間(동포애발양주간)은 한편 信仰心(신앙심)을 發揮(발휘)하여 그리스도 信者(신자)의 信仰者(신앙자)다운을 表示(표시)해야 하는 時間(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너희 가진 바를 팔아 써 애긍지사하야 해여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어 핍절치 아니하는 보배를 하늘에 작만하라, 거기는 도적도 가까히 못하고 쫌도 損傷(손상) 못하나니 대저 너희 보화가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음이니라」 (누까十二·三三—三四(12·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