補給(보급)없는 先遣隊(선견대)는 全滅(전멸)할 뿐 後方敎會(후방교회)의 聲援(성원)이 緊急(긴급)
板門店(판문점)의 休戰會談(휴전회담)으로 말미암아 軍(군)은 制限(제한)된 攻擊(공격) 外(외)에는 그 機能(기능)을 發揮(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그때보다 二個年(2개년)이 經過(경과)한 今日(금일)의 戰線(전선)과 大同小異(대동소이)한 線(선)에서 제자리거름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戰線(전선)에 比較的(비교적) 固定(고정)을 보았을 때 나는 비로서 軍牧部(군목부)에 天幕(천막)을 얻어 聖堂(성당)을 設置(설치)하고 事務室(사무실)을 차렸다 그리고 士兵(사병)도 二名(2명)을 얻어 獨立部處(독립부처)로서 貧弱(빈약)하나마 面目(면목)을 가추기 始作(시작)하였다 二名(2명)의 士兵(사병) 中(중) 一名(1명)은 上士(상사)는 行政(행정)을 擔當(담당)하고 또 한명은 一等兵(일등병)으로 其他(기타)의 일을 마타보았다
兵士(병사)들은 그래도 나를 上官(상관)이라고 극진히 섬길려고 하였다 天幕(천막)을 얻어 居處(거처)의 困難(곤란)을 免(면)하고 士兵(사병)을 얻어 手下(수하)를 거느리고 보니 일이 퍽 수월하여지고 日常生活(일상생활)의 受苦(수고)도 많이 더러지었다
이와 같이 나의 私生活(사생활)과 軍牧業務(군목업무)의 附隨的(부수적)인 事務的(사무적) 面(면)은 進陟(진척)을 보았으나 정작 내가 해야 할 本質的(본질적)이오 根本的(근본적)인 任務(임무)에 대하여는 날이 갈수록 泰山(태산)이 앞을 가리움을 느끼었다 어데서부터 무었을 어떻게 始作(시작)하여야 할런지를 도모지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흔이덜 美軍神父(미군신부)들의 活潑(활발)하고 軌道(궤도)에 오른 活動(활동)만을 보아온 人士(인사)들은 우리들도 軍(군)에 가며는 그와 恰似(흡사)한 화려한 活動(활동)을 하리라고 期待(기대)를 갖고저 있었던 모양이나 이는 全然(전연) 事實(사실)과 맞지 아니한 臆測(억측)에 不過(불과)한 것이다 도대체 UN軍(군)에 있어서의 그리스도敎的(교적) 地盤(지반)이 어떠하며 우리나라 軍隊(군대)에 있어서의 宗敎的(종교적) 實情(실정)이 如何(여하)한지를 把握(파악)치 못한 사람들의 所見(소견)이며 오랜 傳統(전통)과 創始(창시)와의 根本的(근본적) 差異(차이)를 識別(식별)못하는 이들의 見解(견해)이었던 것이다 宗敎(종교), 信仰面(신앙면)에 있어서 過渡期的(과도기적) 白紙狀態(백지상태)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宗敎的(종교적) 實態(실태)와 二千年(2천년)의 오랜 傳統(전통)을 固守(고수)하여 나려온 歐美(구미)의 그것과는 天壤(천양)의 差異(차이)가 있다는 것을 萬一(만일) 그들이 알었다며는 우리들이 軍隊(군대)에 가서 프랑을 짜서 많은 사람들의 歡迎裡(환영리)에 部隊(부대)에서 部隊(부대)로 高地(고지)에서 高地(고지)로 다니면서 보람있는 軍牧業務(군목업무)를 順序(순서)로히 履行(이행)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美軍軍牧(미군군목)들의 使命(사명)이 旣成建物(기성건물)을 維持保存(유지보존)하는 데 있다면 우리들의 任務(임무)란 建築(건축)을 하기 爲(위)한 基礎工事(기초공사)를 하는 데 있는 것이오 UN軍(군) 神父(신부)들의 主要業務(주요업무)가 收穫(수확)를 걷우는데 있다면 우리들의 그것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데 있는 것이다 信者數(신자수)의 稀少(희소)로 因(인)한 가톨릭 地盤(지반)의 劣勢(열세)는 우리들을 困境(곤경)에 모라너었다 드디고 이러스기에는 발판과 기둥이 必要(필요)한 것이다 不幸(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이 必要(필요)한 기둥과 발판이 마련되어 있지 않었다 내가 投擲(투척)된 社會(사회)는 宗敎的(종교적) 倫理的(윤리적) 分野(분야)에서 四面楚歌(사면초가)요 가장 當面(당면)한 現實(현실)은 過去(과거)의 그것과는 全然(전연) 色(색)다른 現實(현실)이었다 미사 聖祭(성제)에는 여름 한더위에도 不拘(불구)하고 씁쓸하고 차디찬 시베리아 北風(북풍)만이 그 무더운 天幕(천막)을 휩쓰렀다 敎友(교우)들은 열존고락을 모아서 헤여도 남을 정도이었나 이러한 現狀(현상)은 우리들을 초조케 하고 孤獨(고독)과 悲觀(비관)으로 陷入(함입)시키었던 것이다 더욱히 自己自身(자기자신)이 虛送歲月(허송세월)하는 無用之物(무용지물) 속수무책으로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存在(존재)라는 劣等感(열등감)이 들 때에는 몹시 괴로웠다
이러한 精神的(정신적) 苦惱(고뇌)은 우리가 격근 衣食住(의식주)에 있어서의 感官的(감관적)인 苦痛(고통)보다는 比(비)가 안 되리만치 크고 深刻(심각)한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거의 우리를 알지도 못하고 理解(이해)도 못하는 새로운 杜會(사회)에 義務的(의무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갸 할 모든 從軍神父(종군신부)들의 共同(공동)된 마음의 쓰라림일 것이다
果然(과연) 이 時代(시대)의 軍牧事業(군목사업)이란 荒蕪地(황무지)를 開墾(개간)하려는 開拓者(개척자)의 피땀어린 勞苦(노고)이오 가톨릭 先鋒隊(선봉대)로서의 高貴(고귀)한 犧牲(희생)인 것이다 事實(사실) 從軍神父(종군신부)들이란 言語(언어), 風俗(풍속), 習慣(습관)이 다른 異民族(이민족)에 가지 않았을 뿐이다 「미씨오나리」의 風貌(풍모)와 조금도 다른 바 없이 우리를 보낸 後方敎會(후방교회)에서 軍牧(군목)이 當面(당면)한 實情(실정)을 모르고 理解(이해)와 同情(동정) 그리고 協助(협조)와 後援(후원)이 없다면 事態(사태)는 極(극)히 困難(곤란)하여질 것이다 後方部隊(후방부대)의 支援(지원)이 없는 先遣隊(선견대)란 即時(즉시) 枯渴(고갈)할 것이오 開拓(개척)군이 없는 團體(단체)란 곧 退步(퇴보)로서 도로 進步發展(진보발전)하는 社會(사회)에 落伍(낙오)를 意味(의미)하는 것이다
從軍神父(종군신부)들은 아마도 누구나 다 그 私生活(사생활)에 있어서 同情(동정)과 後援(후원)을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이왕에 軍(군)에 바친 몸이니 다른 將兵(장병)들과 같이 잠자리의 不便(불편)과 食事(식사)의 苦痛(고통)쯤은 달게 참어 받을 雅量(아량)과 決心(결심)은 되어 있을 것이다 삼시에 소곰국과 흙내는 나는 塹壕(참호) 속에 잠자리도 한마음 한뜻의 兵士(병사)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면는 오히려 유쾌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의 孤獨(고독)과 可能(가능)한 手段(수단)과 方法(방법)에 있어서의 缺乏(결핍)과 不足(부족)이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從軍神父(종군신부)들에게도 다른 누구와 못지않게 手段(수단)과 方法(방법)이 要請(요청)되는 것이다 書籍(서적)도 必要(필요)하고 軍糧(군량)도 必要(필요)하고 돈도 必要(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도 後方(후방)으로부터의 聲援(성원)과 激勵(격려)도 必要(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