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
混亂(혼란)과 破壞(파괴) 이 두 말은 우리 韓國社會(한국사회)에 어데나 通容(통용)되는 悲慘(비참)한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秩序(질서)」와 「再建(재건)」을 제일 많이 부르짖는 民族(민족)이 아니냐? 그러나 무엇보다도 哲學(철학)하고 思索(사색)하는 사람으로는 思想的(사상적) 混乱(혼란)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動物(동물)이 아니라 생각하는 生物(생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秩序(질서)와 再建(재건)이 머리에서 처음 생기는 까닭이며 모든 行動(행동)이 마음과 머리에서 생기는 까닭이다. 再建(재건)과 질서가 머리에서 나온 것과 같이 모든 混乱(혼란)과 파괴과 머리에서부터 始初(시초)한 것을 누가 否定(부정)할 수 있을 것이냐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 이것은 歐羅巴(구라파)의 俗言(속언)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선만을 두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平凡(평범)하고 明瞭(명료)한 文句(문구)이다. 그러나 우리의 社會(사회)와 또 새 世代(세대)에 힘찬
再建(재건)과 秩序(질서)를 찾어줄 榮譽(영예)스러운 靑年(청년) 學徒(학도)와 젊은 사람들의 머리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몇해 지나오는 동안에 政治的(정치적) 格心(격심)한 變化(변화)와 經濟的(경제적) 突發(돌발)하는 環境(환경)의 變化(변화)로 또 그다음 다른 여러가지 變化(변화)로서 우리에게는 몇해가 아니라 몇時代(시대)를 우리가 밖우어서 살아 온 것이다.
眩氣症(현기증)을 일으킬만한 이 變化(변화)와 새 時代(시대)를 낫는 이 産苦(산고)에서 허덕이면서 哲學(철학)을 갖지 않은 우리는 오늘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고 「살아와진」 것이다. 이동안에 祖國(조국)의 都市(도시)는 廢墟(폐허)로 變(변)했고 우리 民族(민족)은 제 領土內(영토내)에서라 할지라도 다른 歷史(역사)에서 類例(유례)가 드문 悲慘(비참)한 大移動(대이동)을 해본 것이다. 지내온 날의 우리의 傳統(전통)으로 있든 儒敎的(유교적) 思想(사상)도 낡어지고 和族(화족)의 神化運動(신화운동)의 잠꼬대도 허무러지고 다른 많은 새 思想(사상)의 無政府(무정부) 狀態(상태)가 整頓(정돈)되지도 못한 채 우리는 時代(시대)에서 時代(시대)를 바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形而下的(형이하적) 破壞(파괴)와 廢墟(폐허)에서 倫理(윤리), 思想(사상), 傳統(전통) 이런 廢墟(폐허)를 안고 現代生活感情(현대생활감정)의 哲學的(철학적) 表現(표현)이라고 할만한 實存主義的(실존주의적) 公布(공포), 無秩序(무질서), 冷却(냉각) 이런 것을 느끼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傳統(전통)의 權威(권위)가 떨어지고
生活目標(생활목표)를 잃은 虛無主義者(허무주의자)로서 새 人間像(인간상)은 나타난 것이다. 勿論(물론) 이들이 哲學(철학)이니 主義(주의)니 이런 槪念(개념)을 가지고 어떤 「카테고리」에 自己自身(자기자신)을 집어넣어서 생각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들은 確實(확실)히 모든 權威(권위)와 價値(가치)를 否認(부인)하고 살어나가는 現象(현상)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理想(이상)과 生活(생활)의 意味(의미)를 갖지 않은 사람이란 아무것이 되여도 되는대로 디여라 하는 無關心主義者(무관심주의자)인 것이다. 主義者(주의자)가 아니라도 實踐者(실천자)가 된 것이다. 生活(생활)의 倦怠(권태)를 느끼는 사람, 모든 生活苦(생활고)와 精神的(정신적) 難關(난관)을 克復(극복)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萬事(만사)가 되는대로 되여라」라는 이 말은 모든 倫理的(윤리적) 行動(행동)을 拒否(거부)한 말이다. 또는 모든 卵管(난관)과 生活苦(생활고)를 克復(극복)할 수 없는 去勢(거세)된 環境(환경)의 支配(지배)에서만 抵抗(저항)없이 흐르는 人間(인간)으로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建設(건설)을 바라고 새 秩序(질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 眞情(진정)이요 民族(민족)을 생각한다는 것이 眞心(진심)이라면 우리는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整頓(정돈)되지 않는 頭腦(두뇌)에서 建設(건설)이 나올 수 없으며 생활의 意味(의미)와 眞正(진정)한 生活哲學(생활철학)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難關(난관)을 克復(극복)하는 힘찬 建設(건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理想(이상)과 生活(생활)의 目標(목표)를 잃은 사람에게 秩序(질서)와 目標(목표)가 要求(요구)되는 建設(건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筆者(필자)는 現代人(현대인)의 이 悲劇(비극)의 哲學史的(철학사적) 原因(원인)을 探究(탐구)하고 世界的(세계적)인 實存主義的(실존주의적) 生活感情(생활감정)을 克復(극복)해야만 할 이 危機(위기)에서 새 目標(목표)와 나의 所信(소신)을 말하고저 하는 바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