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年(년) 10月(월) 9日(일) 初代(초대) 駐韓敎皇使節(주한교황사절) 「파트릭 J. 번」 (方(방)) 主敎(주교)가 서울에 倒着(도착)하였을 때 第二代(제2대) 敎皇使節(교황사절) 「토마스 귄란」 (具(구)) 主敎(주교)는 當時(당시) 春川敎區長(춘천교구장)으로서 이를 歡迎(환영)하려 飛行場(비행장)까지 마종나가섰다.
1950年(년) 7月(월) 두 主敎(주교)는 共産軍(공산군)에게 拉致(납치)되어 百哩(백리) 넘는 이른바 「死(사)의 行進(행진)」 길을 같이 걸었고 11月(월) 2日(일) 北韓(북한)땅에서 「번」 主敎(주교)의 臨終(임종)하는 자리에 「귄란」 主敎(주교)는 그 臨終(임종)을 돌보았고 손수 그 遺骸(유해)를 安葬(안장)하였던 것이다.
작년 4月(4월) 「귄란」 主敎(주교)는 「귄란」 主敎(주교)는 포로의 몸으로부터 解放(해방)되어 故國(고국)으로 歸還(귀환)하고 그후 10月(월) 5日(일)付(부)로 敎皇廳(교황청)으로부터 第二代(제2대) 駐韓敎皇使節(주한교황사절)로 任命(임명)되었던 것인 바 우리의 新舊(신구) 敎皇使節(교황사절) 두 분은 서로 이러한 人間的(인간적)인 깊은 關係(관계)를 맺고 있었다. 「토마스 귄란」 新(신) 使節(사절)은 其間(기간) 美國(미국)을 둘러 3月(월) 25日(25일) 船便(선편)으로 韓國(한국)에 歸任(귀임) 途中(도중)인 바 到着(도착) 時日(시일)은 4月(월) 下旬頃(하순경)이 될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