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간 생명을 파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정정호
입력일 2026-06-24 09:04:37 수정일 2026-06-24 09:04:37 발행일 2026-06-28 제 349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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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조력자살’ 허용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자기 결정권’이라는 명목으로 죽음마저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력존엄사’, ‘의사조력사망’, ‘안락사’와 같은 표현도 문제다. 이들 표현은 자살을 미화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자기 결정권을 내세우는 이들은 “태어난 것은 선택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와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다.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적인 이유로 죽음이 치료보다 ‘저렴한 선택지’가 되어버릴 경우, 병자나 노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리게 될 우려 또한 크다.

생명의 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해 온 교회는 이러한 조력자살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인간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거부하는 것이며, 자신은 물론 이웃과 공동체,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보편적 가치이자 불변의 진리이며, 이는 병들었거나 장애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무익하거나 과도한 치료를 중단하는 것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앞당기는 행위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올바른 인식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더불어 사목적인 대응 방안 마련에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