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2열왕 4,8-11.14-16ㄴ/ 제2독서 로마 6,3-4.8-11 / 복음 마태 10,37-42
오늘은 교회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교회의 일치와 보편적 사명을 되새기는 ‘교황 주일’(연중 제13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온전한 봉헌’, 또한 ‘그분의 이름으로 파견된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복음의 환대’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으로 가장한 불의에 타협을 요구하고, 자아의 확장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세례를 통해 주님과 함께 묻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제2독서), 가장 소중한 가족 관계마저 주님의 사랑 아래 두며(복음), 하느님의 사람을 위해 내 삶의 한 자리를 내어주라(제1독서)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제1독서에서 수넴의 한 부유한 여인은 엘리사 예언자를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소박하지만 정성 어린 환대는 ‘생명의 잉태’라는 축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이 겪을 박해와 고난을 예고하셨지만, 동시에 그들을 환대하는 이들이 받을 상급을 선언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는 위로를, 신자들에게는 예언자들을 돌볼 거룩한 의무를 부여하셨습니다. 오늘, 이 환대의 영성은 교회의 가시적 일치의 중심이신 교황님과 복음화 현장에서 피 흘리며 헌신하는 목자들을 향한 우리의 기도로 확장됩니다.
그들을 환대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내 삶에 임금으로 모시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는 말씀에서 ‘~보다 더 사랑하다’라는 표현은 감정적인 미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사명 앞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절대적 우선순위’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제자직의 정점을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고 하십니다.
당시 로마 제국 체제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한 삶의 무거운 고뇌를 뜻하는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반역자로 처형당하는 자가 겪는 극도의 수치와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히 단절됨을 뜻하는, 생생하고도 끔찍한 현실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길이 세상의 명예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하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길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결합됐고, 그리스도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됐다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복음 말씀대로 부모나 자녀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 이유는, 내 안에 내 힘으로 살아가는 내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갈라 2,20 참조)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11) 이 말씀은 또한 우리를 내면에서 이뤄지는 영적 전쟁과 성전 건립의 차원으로 승화시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요구하신 부모나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 또한 ‘내면의 애착으로부터의 정화’를 뜻합니다. 우리가 하느님보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가족에 대한 집착, 내 영적 위로를 더 사랑할 때, 마음은 소란스러워지고 영혼의 눈은 어두워집니다. 마음의 성전에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임금으로 모시기 전까지는, 영혼은 온갖 잡념과 정욕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자아와 인간적 애착이라는 낮은 땅에 갇혀 세상의 소음에 흔들리며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세례의 은총을 기억하며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느님을 향해 고고히 피어나는 새 생명의 삶을 선택하겠습니까?
오늘 교황 주일을 지내며 보편교회의 목자이신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이름으로 파견된 모든 작은 이들을 환대하는 따뜻한 손길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염려와 집착의 순간마다 마음의 성전으로 들어가 가만히 예수님께 기도를 바치며 내면의 등잔불을 밝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드님,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고, 우리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풍요로운 생명의 기적을 목격하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글 _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