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가 된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문득 ‘나는 어떻게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신앙의 길이라 말할 수 있는, 나의 첫 시작은 언제였을까?
내가 생각하던 평화가 산산이 깨진 덕분에, 바닥부터 다시 돌이켜 내 삶을 전환한 15년 전이었을까? 아니면 예측조차 못 한 사건을 처음 맞닥뜨린 타국에서의 청춘 시절이었을까?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영어 미사에서, 할아버지 신부님이 끊임없이 절박하게 반복하던 한 마디 “Hang in there(조금만 더 버텨)!”라는 구절에 매달려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그 20대 끝자락이었을까? 아니면 유럽 배낭여행 이후 개종한 시점이었을까?
그렇게 거슬러 오르다 보니, 결국 가닿은 곳은 사람이었다. 6살쯤 만났던 가무잡잡한 동네 친구, 간식을 준다며 나를 이끌던 그 친구를 따라 개신교회에 갔다. 그리고 나 혼자 가던 교회에 온 가족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맛있는 간식에 이끌린 나의 응답이 우리 가족을 교회로 인도한 계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렵 아빠가 사랑하던 이복동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일이 부모님을 교회로 이끈 더 깊은 계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는 ‘만나’처럼 내려오는 간식을 따라 교회에 갔다.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계속해서 캐묻던 어린 나의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이 없음을 이미 그 시절에 감지했음에도,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갔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데 한 달 남짓의 배낭여행은 그리 길지도 않았건만, 유럽의 성당과 바티칸 먼발치에서 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주케토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물 흐르듯 가톨릭교회에서 다시 세례를 받았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교회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해졌고, 나를 처음 교회로 데려간 그 친구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기도 중에, 꼬마였던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은 그렇게 가볍고 즐겁게 그 친구를 통해서 나를 부르셨구나. 그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찾았다. 그들 중 몇몇은 목사가 되었고, 몇몇은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고, 몇몇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아름다운 제주에서 가장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좋은 버스 기사도 되었다.
그들을 다시 만나면서 종교와 종파를 넘어선 하나의 교회인 그리스도의 일치를 느꼈다. 종교 간의 대화와 원리는 그리 멀리 있지도 어려운 데 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만나는 매일의 일상 속에 섞여 사는 사람들, 그저 옆에 있기에 서로를 돌보고 사랑했던 날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매일 빚을 지며 살아간다.
결국 신앙은 하느님과 나의 관계이자,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갈 것이기에…. 이미 시작된 2026년 이 뜨거운 여름, 두 달 동안 내가 진 신앙의 빚을 작은 빛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 여름을 보내볼까 한다.
글 _ 손서정 베아트릭스(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