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스페인 사목방문에서 드러난 교황의 정치신학

최용택
입력일 2026-06-23 17:34:20 수정일 2026-06-23 17:34:20 발행일 2026-06-28 제 349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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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이 6월 6일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스페인 국왕과 정부 관계자, 외교관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OSV

레오 14세 교황은 스페인 사목방문 중 정치·외교 지도자들에게 한 연설을 통해 그의 정치신학을 제시했다.

교황은 두 차례의 연설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밝혔다. 하나는 6월 6일 펠리페 6세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외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8일 스페인 의회에서 한 연설이었다.

우선 첫 연설에서, 교황은 교회가 인간을 섬기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인류와 함께 걸으며, 인류의 희망과 상처를 함께 나누고, 오늘을 사는 남녀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에 귀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정치 개입을 우려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교황은 “이는 봉사이지 강요가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교황은 교회가 ‘지상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자율성’과 ‘교회 공동체와 정치 공동체의 구별’을 인정한다고도 말했다. 미국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는 교황이 정교분리를 긍정하고 그리스도교 민족주의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교회가 “공동선을 섬기고, 인간의 공존을 참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려는 성찰의 근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교황은 스페인 하원에서 입법부의 역할을 확인했다. 입법부는 “차이가 경청되고, 정리되며, 가능하다면 공동의 결정으로 변화되는” 자리라고 했다. 미국 의회를 향한 말로도 들릴 수 있는 표현으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입법 활동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결정적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법에 영감을 주는 인간관은 무엇이며, 그 법은 어떤 사회를 건설합니까?”

교황은 인간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질서 안에서 하나의 톱니바퀴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이 보기에 법은 “모든 이를 위한 보호 장치이자, 특정한 이해관계와 의제의 강요를 막는 보증”이 되어야 한다.

교황은 일관된 생명윤리의 관점으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며 이렇게 물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 노인, 병자, 말없이 고통받는 이들, 전적으로 다른 이의 돌봄에 의존하는 이들을 그늘 속으로 밀어내는 공동체를 과연 온전히 정의롭다고 부를 수 있습니까?” 교황은 인간 생명의 수호가 정파적 쟁점도, 특정 종교의 이해관계도 아니며, 문명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스페인과 미국을 갈라놓은 문제이기도 한 ‘비극적인 이주민의 현실’에 대해서도 말했다. 교황이 “때로 극적인 상황 때문에 자신들의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을 깊이 염려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교황은 이들에게 “안전하고 합법적인 경로, 존중에 바탕을 둔 환대, 실질적인 통합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주의 원인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기 땅에 머물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평화와 안전, 품위 있는 생활 조건의 부족,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의 영향 때문에 그 누구도 자기 집을 떠나야만 하는 일이 없도록 힘쓰는 것”을 뜻한다.

교황은 “세계가 깊은 영적·문화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 위기는 폭력, 양극화, 상호 불신의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교황은 “양극화의 불길을 부채질함으로써 인기를 얻으려는 유혹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커진 듯하다”고 지적했다.

필요한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공적 담론, 대화를 촉진하는 데 헌신하는 제도, 진실과 화해를 추구하는 역사적 기억, 그리고 의견 차이 속에서도 시민적 우정과 상호 존중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생활”이라고 교황은 말했다.

교황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 다른 지역의 재무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교황은 “참된 안보는 정의, 인내로운 대화, 국제법 존중, 그리고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세력의 이해관계보다 민족들의 생명을 우선에 두는 정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국제사회가 “정당하고 지속적인 합의에 이르는 인내로운 길로서 대화의 필수적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대화는 “조약에 대한 존중, 외교 활동의 투명성, 무력 사용보다 평화를 우선하려는 진실한 의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교황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세계에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데 있다. 교황은 “법은 선을 섬겨야 하고, 정의는 힘의 한계를 설정하며, 권력은 정당성을 필요로 하고, 가난한 이들은 공동체에 온전히 속하며, 이방인은 그의 존엄에 따라 환대받아야 하고, 인간 생명은 결코 상품처럼 취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페인에서 교황은 세계 지도자들이 정의와 평화에 초점을 맞추도록 어떻게 부를 것인지 보여 주었다. 이는 그들의 소명에 본질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기도와 행동으로 그 부르심을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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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토머스 리스 신부
미국 예수회 사제로 1974년 사제품을 받고 ‘아메리카’지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인사이드 바티칸」 등 교회 조직과 정치에 관한 다양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