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서로에게 기꺼이 스며드는 일

황혜원
입력일 2026-06-24 10:06:16 수정일 2026-06-24 10:06:16 발행일 2026-06-28 제 349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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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는 식물을 기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물부터 챙깁니다. 밤새 잎이 축 늘어지진 않았는지 벌레가 생기진 않았는지 살핍니다. 식물을 감싸는 흙을 만져 봅니다. 흙이 바싹 말랐다면 물을 주어야 합니다. 물을 줄 땐 흠뻑 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물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을 주는 시간대도 중요합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 좋습니다. 햇살이 쨍쨍해 식물이 목마르거나 더워 보여도 대낮에 물을 주면 안 됩니다. 화분 속에서 물의 온도가 빠르게 높아져 식물의 뿌리를 썩히고 식물의 잎끝을 새까맣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공기도 중요합니다. 하루 한 번 이상 환기는 필수입니다. 청소하거나 음식을 만들 때 창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공기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잎이 금세 시들고 맙니다. 온도와 습도도 중요합니다.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안 됩니다. 너무 건조해도 너무 습해도 안 됩니다. 연약한 것들을 기르며 클라라는 섬세한 감각을 배웠습니다. 식물이 클라라를 기른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식물들로부터 생기와 활기를 얻으니까요.

아파트 화단의 키 작은 나무나 대로변의 키 큰 나무를 볼 때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공기와 물과 온도와 습도를 따로 챙겨 주는 이가 없어도, 초록의 생명력을 발산하는 나무들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고 바람이 불며 때가 되면 비가 내리는, 그리하여 나무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자연 현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서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가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들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숲에는, 뿌리가 서로 얽혀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고 합니다. 수령이 2000년에 이르는 나무들도 있다고요. 뿌리와 뿌리가 맞닿아 서로를 지탱하기에 강한 바람과 큰비 앞에서도 나무들은 홀로 버티기보다 서로의 뿌리에 기대어 선다고요.

나무들처럼 클라라와 아우구스티노 부부 역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아우구스티노의 단단한 뿌리가 클라라의 약한 뿌리를 지탱합니다. 식물을 기르면서 생긴 클라라의 섬세한 감각은 건강한 이들이 자칫 놓치곤 하는 공기와 물과 온도와 습도 같은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챙깁니다. 함께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반세기를 함께하면서 때로 시련을 겪었지만 뿌리가 서로 닿아 있었기에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2코린 12,9 참조)

약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랑은 서로의 약함에 기꺼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일입니다. 저, 클라라는 배우자 아우구스티노와 뿌리가 연결된 채로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으로 푸르게 푸르게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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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 그동안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을 집필해 주신 유형선·김정은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