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저는 무얼 해야 하지요?”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한 학생이 묻네요. “글을 계속 쓰면 되지, 너만의 글을, 너만의 경험, 너만의 목소리로.”
“자신이 없어요. 제가 쓴 글은 못나 보이고 AI가 쓴 게 더 멋져 보여요.”
“아니야, 네 경험에 비추어 한 단어씩 잇다 보면 글이 너를 어디론가 새롭게 이끌어줄 거야. 그 기쁨은 다른 것에 비교될 수가 없는 너만의 것이야.”
학생이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디든 글이 넘친다고 해요. 그 글들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네요. 인공지능(AI)이 글을 매끄럽게 고쳐주어 그렇다네요. 하얀 지면 앞에서 늘 조금 긴장되고 설레는 저는 그 설렘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여전히 저만의 속도로 또박또박 글을 씁니다. 글을 다 쓰고 독자님들이 어떻게 읽으실까, 두려운 느낌도 저만의 것이어서, 두려움과 설렘이 없는 글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글쓰기의 선물입니다. 이 마지막 글도 그렇게 쓰고 있네요.
살리는 말을 나누며 보낸 지난 6개월. 돌아보니, 겨울의 슬픔에서 시작한 글이 이 여름, 기쁨으로 나아가고 있네요. 마지막 말로 고른 ‘모든 만남은 은총’은 제 혼배미사 주례를 해주신 신부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행불행을 함께 여미며 사는 우리가 은총이 되는 만남을 이야기할 때 수식어로 ‘모든’을 붙이는 게 가능할까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삶에서 만나는 만남엔 사랑과 기쁨과 헌신과 믿음의 관계도 있지만 배신과 원망과 미움과 억울한 관계도 있으니까요. 교통사고처럼 난데없는 불운으로 상처가 되는 만남도 있고요.
하지만 모든 만남은 다 은총이라고 입버릇처럼 그 말씀을 따라서 되뇌며 돌아보니 정말로 모든 시간이 다 은총이 되는 것 같아요. 이걸 알기에 저는 불운으로 여겨지는 일들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네요.
그리스 학회에서 돌아오는 날 아침에, 전기가 나간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히게 되었는데요. 오래된 호텔, 두 사람만 타도 꽉 차는 밀폐된 공간에 혼자 남겨져 어둠 속에서 답답하고 무서울 때도, “마지막까지 참 다이내믹한 여정이네, 주여!” 하며, 평정을 찾았지요. 이게 다 살리는 말을 늘 새기며 사는 덕분인지 몰라요.
그러니 독자님들, 앞으로 우리에게 오는 모든 만남을 다 은총으로 여기며 이 삶의 순간들을 기쁘게 맞이하기로 해요. 일은 않고 불평만 하는 동료가 옆에 있어도 괜찮아요. 그는 내 덕을 쌓게 하는 사람이니. 내 진심을 배신으로 받는 이가 있어도 좋아요. 그는 나를 자라게 하는 사람이니. 일의 실패는 다른 일을 시작하는 기회가 되니 쓰라려도 땡큐.
나빠진 건강은 나를 더 살피는 계기가 되니 감사. 실로 우리 삶의 모든 만남이 다 기쁨이지요. 삶의 파고는 결국 다 지나고, 다 잘될 것이니, 하느님 앞에 고개 숙여 찬미를 드리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요? 이 지면에서 지난 여러 달, 저의 어설픈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슬픔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다른 자리에서 또 뵈어요.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 그동안 ‘살리는 말 한 마디’를 연재해 주신 정은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