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복음

[현장에서 만난 복음] 청년 도보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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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2026-06-24 10:09:03 수정일 2026-06-24 10:09:03 발행일 2026-06-28 제 349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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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제대하고 신학교에 복학한 첫해 여름방학이었습니다. 본당에 돌아와 주임신부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당시 국토대장정이 유행처럼 열리던 때였는데, 교구에서도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본당 신학생들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본당 주임신부님은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셨습니다. 남과 북의 분위기가 좋아지던 시기였던 만큼, 언젠가 북녘땅이 열리면 도로나 철도가 놓이기를 기다리지 말고 걸어서라도 평양에 들어가자는 뜻을 담아 순례가 기획됐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인 약 200km를 교구 성지를 따라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첫 행사였던 데다 준비 과정에서 여러 오차가 생기면서, 결국 우리는 270km를 걷게 됐습니다.

순례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비를 흠뻑 맞기도 했고, 무더위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남양성모성지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 도보 성지순례는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001년 7월 1기를 시작으로, 올해는 23기 청년들이 다시 순례길에 오릅니다. 올해 순례는 7월 4일부터 11일까지 교구 성지들을 걸으며 진행됩니다.

오랜 시간 이 순례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신부님들과 봉사자들, 그리고 순례단을 맞아 준 성당과 성지의 환대와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그 모든 손길 덕분에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순례가 이어져 온 것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게 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처음 도보 성지 순례에 참여했다가 이 행사가 너무 좋아 10년 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분들은 나이가 들어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도 봉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휴가를 도보 성지 순례에 쏟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토요일마다 모여 회의하고 답사도 다니면서 순례를 준비합니다.

또한, 무더위에 계속 걸어야 하기에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면서 도보 성지 순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까요? 신자들에게 이렇게 봉사하라고 하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더구나 걸으면서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물론 평화통일 기원 도보 성지 순례이지만 지향은 거기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지향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지금의 분단 현실을 기억한다면 그것마저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올해도 약 200km를 걸을 것입니다. 9월에는 단기 순례도 있습니다. 이 행사를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의 바람이 하루빨리 이루어져 북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울리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밤 9시에 이루어지는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기도를 통해 이 청년들의 발걸음에 힘을 보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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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