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九五二年度(1952년도)의 노-벨 文學賞(문학상)은 佛蘭西(불란서)의 小說家(소설가) 「푸란소와 모리약」氏(씨)에게 授與(수여)되었다
「모리약」氏(씨)는 今年(금년) 六十七歲(67세)의 佛文壇(불문단)의 重鎭(중진)으로서 作家生活(작가생활) 三十年(30년)에 文學上(문학상) 功績(공적)도 크다 昨年(작년)에 死亡(사망)한 「지이드」와는 對蹠的(대척적) 立場(입장)에 선 가톨릭 작가이며 特(특)히 二次大戰後(2차 대전 후) 急進(급진) 가톨릭派(파)의 總帥(총수)로서 「작크 마리땡」과 같이 「人間(인간)의 自由(자유)와 가톨릭시즘의 擁護(옹호)에 盡力(진력)한 功績(공적)이 컷든 것이며 그의 文學態度(문학태도)는 人間(인간)의 內的葛藤(내적 갈등)을 探求(탐구)해온 誠實(성실)한 一路(일로)이였었다 그는 「人間(인간)이 自己(자기)를 自己以上(자기 이상)의 것 自己以上(자기 이상)의 것으로 볼려고 하는 自己滿足(자기 만족)」을 어떠한 罪惡(죄악)보다도 싫어했으며 그가 描寫(묘사)하는 人物(인물)의 悲劇(비극)은 모도 여기에서 發生(발생)하는 自己(자기)와 社會(사회)와의 相剋(상극)을 그렸다 이러한 点(점)에서 어데까지나 「지이드」와는 對蹠的(대척적)이며 그의 思想的影響(사상적 영향)이 歐羅巴(구라파)에 있어서는 相當(상당)히 큰 것이다
(사진은 모리약氏(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