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신학

[護敎學試論](호교학 시론) 가톨릭 信仰(신앙)의 序曲(서곡) (22) 神(신)의 存在(존재) 心理的 論證(심리적 논증) / 若望(약망)

남재성
입력일 2026-06-02 15:26:30 수정일 2026-06-02 15:26:30 발행일 1952-12-01 제 118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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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幸福(행복)의 追求(추구)

「피히테」는 그의 「淨福(정복)한 生(생)에의 指敎(지교)」에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諸君(제군)이 무엇을 참으로 사랑하는가? 
무엇을 끝없는 憧憬(동경)으로써 希求(희구)하며 그를 얻고저 努力(노력)하는가? 
어데서 참다운 幸福(행복)을 發見(발견)할 줄로 生覺(생각)하는가? 
이를 내개 알려주면 諸君(제군)은 내게 諸君(제군)의 生(생)을 밝혀주는 것이다 
諸君(제군)이 사랑하는 것 그것으로써 諸君(제군)은 곧 사는 것이니…… 사랑이 바루 諸君(제군)의 生(생)이요 生(생)」의 根元(근원)이요 所在地(소재지)요 中心點(중심점)인 것이다 
諸君(제군) 안에 있는 온갖 活動(활동)은 오직 하나인 이 中心點(중심점)으로 向(향)하므로써 生(생)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幸福(행복)하고 平安(평안)하고 滿足(만족)한 狀態(상태)에 있기를 願(원)하되 어데에 이 幸福(행복)이 있는지를 아지 못한다」

(果然(과연)) 聖(성) 토마스가 「무릇 行爲(행위)하는 者(자)는 目的(목적) 때문에 行爲(행위)한다」고 일렀음같이 人間(인간)은 반드시 어느 目的(목적) 밑에서 行爲(행위)하는 것이요 그 窮竟目的(궁경목적)이란 幸福以外(행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人間(인간)이 哲學(철학)하기 시작한 때부터

(幸福(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데에 있는 것인지를 模索(모색)하여서 가지가지 定義(정의)와 幸福觀(행복관)이 나타났으되 어찌 되었든 人生無常(인생무상)을 깨달아 열槃寂靜(열반적정)을 說法(설법)한 부처거나 노래와 깡깡이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뽀헤미안」이거나 甚至於(심지어) 自殺者(자살자)까지라도 行爲(행위)의 最終目的(최종 목적)이 幸福(행복) 아님이 없는 것이다 마치 地球(지구)가 引力(인력)을 말미아마 움지기는 것과 같이 幸福(행복)은 不可抗力(불가항력)으로써 人間(인간)의 心情(심정)을 끌어마지않나니 消極的(소극적)으로 自足(자족) 無慾(무욕) 無我等(무아 등)의 狀態(상태)를 幸福(행복)으로 보거나 積極的(적극적)으로 要求(요구)의 充足(충족)을 가르쳐 幸福(행복)이라고 하거나 
(左右間(좌우간)) 人間(인간)이 저도 모르게 幸福(행복)을 追求(추구)하는 事實(사실)은 가장 一般的(일반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人間(인간)에게 共通(공통)되는바 이 心理的事實(심리적 사실)을 좀더 細密(세밀)히 分析(분석)하여 보면 人間(인간)이 追求(추구)하는 幸福(행복)은 어느 部分的(부분적)이거나 暫時的(잠시적) 또는 變轉(변전)하기 쉬운 그러한 것이 아니라 普遍的(보편적)이고 恒久的(항구적)이고 不可變的(불가변적)인 것이니 幸福(행복)이 진정으로 행복다웁기 爲(위)하여는 完全無缺(완전무결)을 要請(요청)하기 때문이다

(完全無缺(완전무결)하므로) 온갖 善(선)이 없지 아니함이 없어 동그라미처럼 두렷하고 모자랄 것이 없는 오롯한 客觀善(객관선)이라야 하며 完全無缺(완전무결)하므로 無窮(무궁)한 時間(시간)에 사뭇 벋혀서 時間(시간)과 함께 褪色(퇴색)하거나 이즈러질 수 없어야 하며 따라서 完全無缺(완전무결)한 이 幸福(행복)의 客體(객체)를 누리는바 主觀(주관)이 진정 행복되기 爲(위)하여 행복內容(내용)의 完全性(완전성)과 不變性(불변성)에 對(대)한 確信(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행복自體(자체)가 客觀的(객관적)으로 完全(완전)한 것일지라도 그를 누리는바 主觀(주관)인 人間(인간)이 오래지 않어 自己(자기)는 그 행복을 잃어버릴 것을 豫感(예감)한다면 그러한 행복感(행복감)은 진정한 意味(의미)에 있어서의 행복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도로혀 一種(일종)의 不幸(불행)인 까닭이다 이러므로 人間(인간)은 內心(내심)으로부터 圓滿無缺(원만무결)한 행복에의 欲求(욕구)를 가지고 이를 爲(위)하여 意識的(의식적)이건 無意識的(무의식적)이건 그의 全努力(전 노력)을 기우리는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人間行爲(인간 행위)의 最終目的(최종 목적)이 完全無缺(완전무결)한 행복이기는 하되 그렇다 하여서 人間(인간)이 現實(현실)에 찾는바 所謂(소위) 행복이란 것들이 진정한 행복의 客觀的價値(객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例(예)를 들건대 書經(서경) 洪範篇(홍범편)에 五복(오복)을 가르켜 一日壽(일일수), 二日富(이일부), 三日康寧(삼일강녕), 四日修好德(사일수호덕), 五日考終命(오일고종명)이라 하던 것을 뒤에 와서는 항용 壽(수), 富貴(부귀), 康寧(강녕), 子孫衆多(자손중다)이라고 일컫게 되었거니와 古今(고금) 哲學者(철학자)들 亦是(역시) 이와 비슷한 소리를 하였다

(人間生活(인간 생활)의 最終目的(최종 목적)을) 이승에 局限(국한)하는 唯物論者(유물론자)와 實證論者(실증론자)는 壽(수), 富貴(부귀), 康寧(강녕) 및 科學(과학) 藝術(예술)과 社會發展(사회 발전)을 행복이라 하고 에피쿠로스學派(학파)가 人間(인간)의 目的(목적)은 幸福(행복)이요 행복은 곧 快樂(쾌락)이로되 積極的(적극적)이 아니라 消極的(소극적)인 말하자면 마음의 平靜(평정)(Ataraxia) 이라고 가르치는가 하면 不動心(부동심)(Apatheia) 을 主張(주장)하던 소토익學派(학파)는 이 快樂主義(쾌락주의)와 對立(대립)하여 「道德(도덕)을 爲(위)한 道德(도덕)」에 生活理想(생활 이상)을 두고 나머지 富貴(부귀) 康寧(강녕) 壽(수) 考終身(고종신)(自殺(자살)을 肯定(긍정)하므로) 等(등)을 或(혹)은 대스럽지 아니한 것이라 或(혹)은 그것들이 人間努力(인간 노력)의 唯一(유일)한 中心(중심)이 될 때- 百害無益(백해무익)한 것이라 하였다 가장 健全(건전)한 逍遙學派(소요학파)조차 행복을 現世(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肉體的(육체적) 복分(복분)과 아울러 精神的(정신적) 瞑想(명상) 以上(이상)의 것으로 알지 아니하였다

(結局(결국)) 近世哲學者(근세 철학자)들의 행복觀(관)도 이에서 벗이나지 못하였으니 「벤탐」이나 「스튜어트 밀」 같은 功利主義者(공리주의자)들이 「에피쿠로스」나 逍遙學派(소요학파)의 說(설)을 따르는가 하면 「칸트」도 犬儒派(견유파)에 못지않은 意志(의지)의 崇拜(숭배)에 치우쳐 「善意(선의)」만이 絕對的(절대적)으로 善(선)한 것이라 하였고 德(덕)은 究極(구극)에 있어 복과 一致(일치)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밖에 實證論者(실증론자)들은 科學(과학)의 驚異(경이)로운 發達(발달)을 事實(사실) 以上(이상)으로 極(극)히 評價(평가)하여 가로대 科學(과학)만이 人間(인간)의 모든 欲求(욕구)를 채울 수 있고 人間(인간)을 행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將來(장래) 한 世紀(세기)를 爲(위)하여 普遍的(보편적)인 宗敎(종교)가 될 것이라고 豫言(예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말한바와 같이 人間活動(인간 활동)의 最終目的(최종 목적)이 행복임에는 틀림없으되 그 행복이란 위에 말한바 五복(오복)이라거나 道德(도덕) 또는 學問(학문) 等(등)에 있을 수 있는가?

結論(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이런 따위들이 人間(인간)의 要求(요구)에 應(응)하는 어느 價値對象(가치 대상)이기는 하되 全人間(전 인간)을 十分滿足(십분 만족)시킬 수 있는 客觀的價値(객관적 가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웬고 하면 그리되기 爲(위)하여는 세 가지 要素(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卽(즉) 어느 價値(가치)가 人間(인간)의 要求(요구)를 남김없이 充足(충족)시키려며는
첫째 그것은 他者(타자)를 爲(위)한 目的(목적) 때문이 아니라 自己目的(자기 목적)적으로 欲求(욕구)될 만큼 自體(자체)가 完全(완전)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 人間(인간)의 知性(지성)과 意欲(의욕)을 빈틈없이 滿足(만족)시킬 만큼 最上至高(최상지고)의 것이라야 하며 
셋째로 恒久不變(항구불변)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有限善(유한선)에는 이러한 條件(조건)이 缺如(결여)되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