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意外(의외)의 逢辱(봉욕)
第二次大戰(제2차 대전)이 終結(종결)되고 祖國(조국)은 大韓民國(대한민국)이란 國號(국호)로 建國(건국)되자 獨立運動(독립운동)의 元老指導者(원로 지도자)이엿던 鄭牧師(정목사)의 歡喜(환희)는 누구보다도 컸었다
그러나 政府(정부)가 樹立(수립)되자 國會內部(국회 내부)에까지 潜入(잠입)한 共產黨(공산당) 뿌락치 一派(일파)의 兇計(흉계)가 成功(성공)되어 「反民族行爲處罰法」(반민족행위처벌법)이 다른 法律(법률)에 優先(우선) 먼저 制定(제정)되고 여기에다 反共思想(반공 사상)을 가진 有力者(유력자)를 얽어서 埋葬(매장)하고저 하는데 利用(이용)하였던 것이니 卽(즉) 第一(제1)에 憲法(헌법) 第二(제2)에 政府組織法(정부조직법) 第三(제3)에 反民法(반민법)이란 順序(순서)로 一般法律(일반 법률) 중에는 第一着(제일착)으로 制定(제정)된 것이 이 反民法(반민법)이다 當時(당시)의 國會內(국회 내)에서 共產(공산) 뿌락치 一派(일파)들이 反共勢力驅逐(반공 세력 구축)에 얼마나 汲汲(급급)하였으며 또 一般執權當局者(일반 집권 당국자)들이 이 뿌락치 一派(일파)에 휘둘려 지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하여 政治(정치) 行政(행정) 法律(법률) 宗敎(종교) 實業(실업) 等(등) 各界(각계)의 有爲人士(유위인사)들 중에서 罪(죄) 없이 民族的(민족적) 憎惡(증오)의 對象(대상)이 되는 이 罪名(죄명)에 얽히이어 犧牲(희생)된 者(자)가 많았던 것으로써 鄭牧師(정 목사)도 이들 中(중)의 한 사람으로 投獄(투옥)되었다가 六十日(60일)만에 釋放(석방)되는 逢辱(봉욕)을 당하였다
最高級(최고급)의 愛國者(애국자)로서 이와 같이 억울한 罪名(죄명)으로 投獄(투옥)되어 二個月(2개월)이나 獄苦(옥고)를 當(당)하면서도 그는 晝夜(주야) 계속하여 反民法(반민법)을 取扱(취급)하는 司直(사직)의 悔悟(회오)와 新生國家(신생 국가)의 發展(발전)을 위하여 祈禱(기도)를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 事實(사실)은 같은 監房(감방)에서 苦生(고생)하던 이들의 證言(증언)이다
◉가톨릭에 歸正(귀정)
無罪釋放(무죄 석방)이 된 그는 그 後(후) 몇 個月(개월)이 지나 卽(즉) 一九四九年十月(1949년 10월) 어느 날 서울 明洞(명동)에 있는 天主敎(천주교) 서울敎區(교구) 主敎館(주교관)에 盧主敎(노기남 주교)를 訪問(방문)하였다
그는 主敎(주교)에게 自己一生(자기 일생)에 걸어온 經歷(경력)을 陳述(진술)한 後(후) 天主敎(천주교)에 歸正(귀정)하겠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基督敎(기독교)의 敎派(교파)가 無數(무수)히 갈러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違反(위반)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읍니다 어느 敎派(교파)가 眞正(진정)한 基督敎(기독교)이냐 하는 点(점)에 對(대)해서는 적어도 過去十餘年間(과거 10여 년간)에 걸처 꾸준히 研究(연구)해 보았읍니다 혹은 天主敎神父(천주교 신부)도 찾아보고 또 天主敎(천주교)의 書籍(서적)도 틈틈히 求(구)해 보았으며 天主敎內部(천주교 내부)의 空氣(공기)도 엿보아왔읍니다 이렇게 여러 角度(각도)로 檢討(검토)하여 본 結果(결과) 어쩐지 天主敎(천주교)가 眞正(진정)한 基督敎(기독교) 같이 生覺(생각)이 되었으나 八十平生(80평생)을 監理敎(감리교)의 敎役者(교역자)로 있던 나로서 天主敎(천주교)에 改宗(개종)하여 一個(일개) 평신도가 되면 許多(허다)한 監理敎(감리교)의 敎役者(교역자)와 信徒(신도)들은 志操(지조) 없는 老物(노물)이라 하여 批難(비난)이 클 것이요 또 나 自身(자신)으로서도 孤寂(고적)한 餘年(여년)을 지나게 될 것임으로 躊躇(주저)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近來(근래)에 와서 天主敎會(천주교회)에서 發行(발행)한 「敎父(교부)들의 信仰(신앙)」이란 册子(책자)를 入手(입수)하여 再三熟讀(재삼 숙독)하고 비로소 天主敎(천주교)가 아니면 救靈(구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나는 單只(단지) 救靈(구령)만을 爲(위)하여 一生(일생)을 살아왔고 只今(지금) 七十七歲(77세)이니 남은 生命(생명)도 얼마 안 됩니다 「靈魂(영혼)을 잃으면 世界榮華(세계 영화)를 다 얻은들 무엇하오리까」 「저녁때 품군도 같은 품값을 받는다」는 말씀을 信賴(신뢰)하고 只今(지금)이라도 天主敎(천주교)에 改宗(개종)코저합니다 多幸(다행)히 老妻(노처)도 天主敎歸正(천주교 귀정)에 合意(합의)가 되었아오니 願(원)컨대 우리 夫妻(부처)의 靈魂救援(영혼 구원)에 對(대)하여 指導(지도)하여 주소서 天主敎(천주교)에 歸正(귀정)함으로써 닥처오는 苦痛(고통)과 打擊(타격)도 있을 줄 압니다마는 靈魂(영혼)을 救(구)하기 爲(위)하여서는 어떠한 苦痛(고통)도 甘受(감수)할 覺悟(각오)이오니 疑心(의심)치 말아 주소서」
하고 鄭牧師(정 목사)는 主敎(주교) 앞에 꿇어 感淚(감루)를 먹음고 祝福(축복)을 請(청)하였다
眞心(진심)으로 救靈(구령)을 願(원)하는 사람이라면 프로테스탄에서 가톨릭에 歸正(귀정)하는 것이 當然(당연)한 일이오 異常(이상)할 것이 없지미는 鄭牧師(정 목사)의 述懷(술회)를 들우 盧主敎(노 주교)는 「다마스꼬」에서 「사오로」를 만난 「아나니아」의 기쁨을 聯想(연상)하시는 듯이 欣喜(흔희)와 慈愛(자애)가 넘치는 表情(표정)으로써
「安心(안심)히시오 天主(천주)의 빛우어 주시는 恩惠(은혜) 감사합시다」하시고 指導神父(지도 신부)를 定(정)하여 주셨다
이리하여 鄭牧師(정 목사)는 靈名(영명)을 宗徒(종도) 바오로로 그 夫人(부인) 林訥利(임눌리) 女士(여사)는 嬰孩(영해) 예수 데레사로 定(정)하고 張勉(장면) 博士(박사)의 兩親(양친) 張基彬翁(장기빈 옹) 夫妻(부처)를 代父代母(대부대모)로 定(정)하여 一九四九年十一月(1949년 11월) 第三主日(제3주일)에 主敎座大聖殿(주교좌 대성전)에서 敎皇使節(교황 사절) 「번」 主敎(주교) 以下(이하) 多數(다수) 司祭(사제)와 信徒參席裡(신도 참석리)에 盧主敎(노 주교) 執典(집전)으로 領洗(영세)하였다
이 領洗式場(영세 식장)에는 監理敎(감리교)의 목사와 信徒(신도)들도 若干(약간) 參席(참석)하였는데 그 後(후) 가톨릭에 歸正(귀정)한 목사와 信徒(신도)도 있었다
鄭春洙氏(정춘수 씨) 老夫妻(노부처)가 歸正領洗(귀정 영세)한 後(후) 이 消息(소식)은 國內(국내)는 勿論(물론)이오 外國各宗敎雜誌(외국 각 종교 잡지)와 新聞(신문)에 揭載(게재)되었으며 멀리 美國(미국), 伊太利(이태리), 瑞西(서서:스위스), 諾威等(낙위:노르웨이 등) 各國(각국)의 가톨릭 團體(단체)와 信徒(신도)로부터 祝賀書翰(축하 서한)이 還至(환지)하였고 鄭(정)바오로氏(씨)는 十里(10리) 以上(이상)의 距離(거리)에 있는 明洞大聖堂(명동 대성당)에 主日(주일)과 小瞻禮(소첨례)에 夫妻同伴(부처 동반)하여 徒步(도보)로 또박또박 미사 聖祭(성제)에 參詣(참예)하고 祈禱(기도)와 프로테스탄敎人(교인)에 對(대)한 傳敎(전교)에 努力(노력)하여 韓寅洙(한인수) 목사와 數人(수인)의 信徒(신도)를 歸正(귀정)시키고 繼續(계속)하여 傳敎(전교)에 힘쓰는 中(중) 六·二五事變(6·25 사변)을 만났다
◉歸正後(귀정 후)의 生活(생활)
鄭翁(정 옹)이 聖神(성신)으로써 聖洗(성세)를 받은 後(후) 神樂(신락)이 充滿(충만)하여 再生(재생)한 歡喜(환희)가 顔貌(안모)에 나타났다 漢江(한강)의 佳景(가경)을 俯瞰(부감)하는 净潔(정결)하고 雅談(아담)한 邸宅(저택)(서울市(시) 城東區(성동구) 金湖洞(금호동) 三八一(381))에는 聖書(성서)를 滿積(만적)한 書齋(서재)가 있고 二層(2층)에는 祈禱專用室(기도 전용실)이 十字苦像(십자고상)과 聖畵(성화)로 裝飾(장식)되어 있어 언제든지 司祭(사제)를 請(청)하여 미사 聖祭(성제)를 奉獻(봉헌)할 수 있도록 準備(준비)되어 있으며 應接室(응접실)과 各居室(각 거실)에는 歸正祝賀(귀정 축하) 선물로 各處(각처)에서 받은 聖像(성상)과 聖畵(성화)가 適當(적당)히 奉安(봉안)되어 있다
翁(옹)이 領洗(영세)한 後(후)는 敎皇使節(교황사절) 「번」 主敎(주교)를 비롯하여 서울 市內各敎會(시내 각 교회), 各修道院(각 수도원), 病院(병원), 學校(학교) 등 가톨릭敎會所屬團體(교회 소속 단체)를 訪問(방문)하였는데 特(특)히 갈멜修道會(수도회)의 封鎖觀想生活(봉쇄 관상 생활)과 聖바오로修道會(수도회)의 孤兒養育(고아 양육)과 傳敎活動(전교 활동)의 實情(실정)을 視察(시찰)할 時(시)는 感激(감격)한 나머지 「가톨릭敎(교)에 歸正(귀정)케 여주신 天主(천주)의 大恩(대은)을 다시금 感謝(감사)한다」고 눈물 섞인 感想(감상)을 發表(발표)하였다
「번」 主敎(주교)를 비롯하여 多數(다수)의 神父(신부)와 敎友(교우)가 翁(옹)의 邸宅(저택)을 訪問(방문)하였으며 監理敎(감리교)의 敎役者(교역자)와 信徒(신도)의 방문도 끊일 사이가 없었다 監理敎(감리교)의 방문객 中(중)에는
「내가 가장 尊敬(존경)하고 信賴(신뢰)하는 先生(선생)이 改宗(개종)하셨으니 나도 가톨릭을 研究(연구)하겠읍니다」하는 이도 있었지만
「참으로 섭섭합니다 先生(선생)이 그러실 줄은 몰랐읍니다」하고 絶緣(절연)의 作別人事(작별 인사)를 하고 가는 이도 있었고
「우리 敎會(교회)의 元老(원로) 목사로서 오늘 이게 무슨 꼴이오 우리 監理敎會(감리교회)의 體面(체면)은 무엇이 된단 말이오」하고 激憤(격분)한 抗議(항의)를 하는 이도 있었으며 傳道夫人(전도 부인)들은 三三五五(삼삼오오)로 찾아와서 改宗撤回(개종 철회)를 하여 달라고 눈물로써 졸라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翁(옹)은 主保聖人(주보성인) 바오로 宗徒(종도)의 勇氣(용기)를 본받아 조금도 人情(인정)에 끌리지 않고 도로혀 가톨릭의 四大特徵(4대 특징)과 七聖事(7성사)의 恩寵(은총)을 說明(설명)하여 가톨릭敎(교)가 正統(정통)인 基督敎(기독교)라는 것을 力說(역설)하고 改宗(개종)을 力勸(역권)하였다 翁(옹)의 勸誘(권유)로써 未久(미구)에 歸正(귀정)한 목사와 信徒(신도)도 있었지만 或者(혹자)는 翁(옹)을 指稱(지칭)하여 精神異常(정신 이상)이라고 辱說(욕설)한 이도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