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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수필)] 點描(점묘) - 歸朝(귀조) (續(속)) / 돌샘

남재성
입력일 2026-06-02 15:26:28 수정일 2026-06-02 15:26:28 발행일 1952-12-01 제 11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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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만 아니었드면 멀리 나일江 沿岸(강 연안)의 古墳(고분)과 遺蹟(유적)이며 유프라떼스 流域(유역)에까지 考古行脚(고고 행각)을 떠났을 것을 飛行機(비행기) 위에서만 古代國家(고대 국가)의 輪廓(윤곽)을 보신 것이 몹시 恨(한)될 일이다

예루살렘의 博物館(박물관)엘 날마다 다니면서 알뜰살뜰이 出土品(출토품)의 陳列番號(진열 번호) 싸이스를 적고 그중 代表的(대표적)인 것은 손수 그려가지고 온 것이 二千數百点(2천수백점)!

華麗(화려)하지 못한 노오트에 나타나는 舊石器時代(구석기 시대)로 비롯하여 靑銅器時代(청동기 시대)까지의 갖가지 遺物(유물)들을 구경하는 눈자위가 뜨거워진다

 

「天才(천재)는 努力(노력)이 그九十(90)퍼어센트라」 했던가? 그러나 天才聖書學徒(천재 성서 학도)의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孤高(고고)하구나!

新聞(신문)도 라디오도 손님도 아쉬울 것 없이 이미 古代(고대)의 속에 새로 이 사시는 神父(신부)여 이른바 「聖書敎회(성서교회)」派(파)들에 對(대)하여 한 呼吸(호흡)하는 護敎(호교)의 방패이시여

돗자리 세닢의 하꼬방에서 「生命(생명)의 말씀」을 探究(탐구)하며 健康(건강)하시라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은 적도다」

小花保育園(소화보육원)

十月(10월)이라 초이튼날은 깔멜의 어린 꽃 聖女(성녀) 데레사 祝日(축일)의 전날!

여기 서울 釜山(부산)에 小花保育園(소화보육원)의 어린 꽃들이 일곱 돌 잔치를 맞는 날이로다

不死鳥(불사조)처럼 잿덤이 속에서 홰를 치고 復活(부활)한 「어린이집」의 落成式(낙성식) 날이로다

釜山鎭(부산진)에서 東萊(동래)로 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니 볼 수 없는 두던귀에 孤兒院(고아원)이랄 수 없게 한 二層洋屋(2층 양옥)의 小育園(소육원)!

싸우는 나라래서 썩고 冷情(냉정)할 줄만 아는 現實(현실)에 있어 아귀찬 精神(정신)에서 이루어진 健實(건실)하고도 아름다운 이 建築(건축)이야말로 온갖 希望(희망)을 잃어버린 大衆(대중)에게 마땅이 읽어야 할 한 卷(권) 「聖書(성서)」이리라

여니 때이면 찾아오는 손이 없어 언제고 쓸쓸하던 이 집 通路(통로)에 장날인듯 모이신 어르신네 많기도 하다

듣자니 同族(동족)보다도 도로혀 異國人(이국인)으로써 따뜻한 同情(동정)을 아끼지 않으신 캐롤 安主敎(안 주교)님 美從軍神父(미 종군 신부)님들을 비롯하여 사회部長官(사회부 장관) 部長(부장) 市長(시장)의 代理(대리) 各保育園院長(각 보육원원장)님들과 져널리스트 그리고 우리 側(측)의 崔主敎(최덕홍 주교)님 諸位神父(제위 신부)님 및 信者代表(신자 대표)들이 이날을 祝賀(축하)하시는 것이다

있는 정성과 재조를 다하여 質素(질소)하게 그러나 산뜻하게 꾸민 二層(2층) 큰 홀에 가추가추 맛난 飮食(음식)이 오른 宴席(연석)! 내 평소에 쇠천 한 푼을 보태어 드린 바 없거늘 어찌 이 자리의 맨끝인들 더럽히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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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月二日(10월 2일)에 落成式(낙성식)을 舉行(거행)한 釜山小花保育園(부산 소화보육원)

가슴마다 왼쪽에 꽃을 달고 돌잔치를 빛내이는 어른들 가운데 補佐李甲秀神父(보좌 이갑수 신부)님이 보이지 않으심은 시원섭섭한 일일 수밖에 없다 오늘 이 자리의 主人公(주인공)이신 院長兼本堂主任(원장 겸 본당 주임) 鄭在石(정재석) 神父(신부)님의 物心兩面(물심양면)에 걸친 努力(노력)으로 바루 몇일 전에 美(미)가톨릭大學(대학)에 硏究次(연구차) 떠나시었으니 이 아니 시원하며 特(특)히 火災(화재)로부터 再建(재건)에 이르기까지 主任(주임)을 도아 苦樂(고락)을 나누디가 모처럼 베풀어진 盛典(성전)을 앞둔 채 떠났으니 그 아니 섭섭한가?

火災(화재)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것은 바루 몇 달 전 일이었다

二月 十二日(2월 12일)! 釜산(부산)의 各新聞(각 신문)은 凡一洞(범일동)의 큰 불을 報道(보도)하였으니 그것이 何必(하필) 小花保育園(소화보육원)이었다

漏電(누전)으로 말미암아 밤중에 天井(천정)으로부터 불이 붙기 始作(시작)하여 채곡채곡 쌓아 둔 어린이들의 옷이불을 타고 내려온 불ㅅ길이라 가뜩이나 물 없기로 이름난 釜山(부산)의 水道(수도)가 당키나 할 손가?

두고 두고 어린이들을 입힐 가지가지 옷들! 금싸래기보다 아까운 식량과 우유! 그리고 허리띠를 졸라매가며 장만해 둔 어린이들의 樂器(악기)와 작난감!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모조리 타고 말았다 百七十名(170명) 食口(식구)를 길러내는 살림에 어느 것이 아니 아까웠으랴마는 그런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지라도 오직 한 가지 건져야만 할 것이 있었다-곧 어린이들의 生命(생명)! 머리카락 하나인들 태워서는 아니 될 어린이들-不幸(불행)이도 嬰兒(영아)들이 많았다-을 살리고저 불꽃 속에로 뛰어들던 院長神父(원장 신부)의 그때의 모습을 英雄(영웅)답다는 한마디로 表現(표현)하여서 넉넉할까?

이리하여 고스란이 어린이들의 生命(생명)을 건져 내고 살림이라곤 피아노 한 대를 끄내었으나 이튼날 옷 밥 집이 찬 재로 남았을 제 神父(신부)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교? 여기 저기서 同情(동정)하는 人事(인사)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慰勞(위로)하는 말이 아니 고마운 것이 아니로되 千萬(천만) 마디 말로써 타버린 집이 도로 세워질 것이냐?

그 뒤 CAC의 援助(원조)로 나무와 유리와 세멘트가 많이 드러오긴 하였으나 부뜨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나무 따로 세멘 따로가 제절로 집이 될까? 자 깨면 어제가 옛날 같이 말못된 經濟(경제)인지라 百五十餘坪(150여 평)짜리 文化住宅(문화 주택)을 그나마 地下室(지하실) 二層(2층) 附屬建物(부속 건물)까지 세워서 이룩하지니 있는 돈 가지고도 힘든 일이어든 없는 밑천에 그 고생 오작하였겠으며 그러자니 남 살리자고 自己(자기)는 뼈가 휘었을 밖에…

 

오래만에 빗은 머리 다려진 옷맵씨로 웃는 낯 저 神父(신부)님아! 봄바람에 눈이 슬듯 그때 苦楚(고초)를 잊었난다?

묻노니 손님네야 오늘을 있게 한 피땀의 歷史(역사)를 아는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