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에는 8호로 오기)
그는 미국인 신부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세계에서도 가장 문명하고 부강하야 우리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생활수준이 높은 미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이렇게 병중에도 가장 무섭고 더러운 병에 걸려 같은 동포들끼리도 가장 천대하고 배척하는 나병환자들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焦點)이 였다기 보담도 저윽 걱정스러웠다
꽁문이에 짐 싣는 차를 달고 온 찝차는 간신히 언덕길 중간쯤 와서는 그만 바퀴가 눈에 헛돌아 못 올라온다 곧 환자 중에서도 젊고 육체가 덜 불구한 사람들이 와르르 달려가 사무실 앞 광장까지 밀어올렸다
차에서 내린 마리안 신부는 어린 소년처럼 홍조(紅潮)된 얼굴에 우슴이 가득하였다 신부님을 둘러싼 여러 환자들도 진정 그리운 어버이를 만나는 것처럼 희색이 만면했다
신부는 인사가 끝나자 곧 찝차 뒤에 달고온 짐을 풀게 하였다 의류(衣類), 구두, 담요, 과자, 통조림, 밀가루, 크림, 비누 등등 심지어는 머리 깎는 바리깡이랑 라이타-돌까지 나온다
이렇게 많은 선물을 가져오는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오실적마다 그러했다
짐을 다 풀고나니 신부는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까히 가더니 한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애를 서슴지 않고 받아 안는다
그리곤 얼려도 보고 높이 치켜올려도 보았다가 다음엔 요람(搖籃)에 넣어 호사태워주듯 일렁일렁하는 그 표정과 동작엔 조금도 꾸민 것 같은 어색한 빛은 아무리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바루 멀리 집을 떠나 여행하던 어버이가 오랫만에 돌아와 그리운 자기 자식을 붓안고 애무하는것과 다름이 없었다
처음으로 이런 풍경을 목격하는 춘보는 자기 눈도 의심하고 싶었을 뿐더러 그 신부의 눈마자 의심스러워 할 만큼 놀랐다
그는 다시 한번 그 신부를 둘러싼 여러 환자들의 이지러지고 터지고 울퉁불퉁한 얼굴을 눈여겨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라기 보다도 천대와 멸시의 상징(象徵)이라는 것이 적당하리만큼 과거에 있어서 이나 무수한 천대를 받아왔을 뿐더러 지금 당장이라도 이 요양원 밖으로 나가는 그 시간부터는 또다시 뭇사람의 멸시를 받지않을 수 없는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더욱 양복깨나 입고 제법 신사인체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환자들을 천대하고 멀리했다
우선 가까운 예로 자기가 근무하는 우체국 국장만 하더래도 간혹 걸식하는 환자들이 동양하러오기만하면 멀직암치 문밖에 섰는데 문에 옷자락 하나라도 대일까바 펄펄 뛰고 야단이었다
그 장면과 지금 눈앞에 있는 엄청나게도 차이가 있는 장면과를 춘자 속으로 대조해볼 때 춘보는 감히 얼굴을 들고 쳐다보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가슴이 쓰렸다 신부님은 이 아이 저 아이 번갈아가며 한 차레씩 안아주고 난 다음엔 「캬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시느라고 한참 또 부산했다
그건 신부와 신자들끼리라 하기보담도 지극히 단란(團欒)한 한 가족처럼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마치 일년 열두달을 깊은 눈 속에만 쌓여있는 가장 쓸쓸하고 고달픈 유형지같이 여겨지던 이곳이 갑자기 백화가 발한 봄동산처럼 느껴진다 신부님은 한참 후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떠날 시간이 된듯 뒤로 물러가 엄숙한 태도로 강복을 주신 다음 차에 올랐다
모두들 섭섭한 얼굴로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차는 떠나갔다
언덕 아래로 살아지는 차체를 혼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고 섰던 춘보 가슴이 갑작이 뭉클해진다
그 신부님을 뵈온지 불과 삼십분 남짓한 그 사이에 벌써 오랫동안 사괴어 온 것처럼 사묻히게 정이 든 자신을 발견하겠다
「퍽 인자하신 분이지요」
젊은 직원이 곁으로 와 말을 건넨다
「네 보통사람으루선 도저히 흉내도 못 내겠어요」
「그럼은요 우리 천주교의 신부님이람 벌써 속세는 초월하구 계시니까요 영혼의 더러운 것은 멀리 하시지만 육신의 더러운 것은 문제가 아니람니다」 「……」
춘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