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月二十日(9월 20일)
제아무리 악착같은 공산괴뢰이기로니 인천 함포 소리만 들리는 날이면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려니 하였든 것이 요놈의 종낙이란 어찌나 모지락스러운지 후방에 있는 녀석들의 행패는 날로 독하여가기만 합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공론이 앞선 함포사격에는 「맥아더」 장군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고 이리하여 시컴언 군함들이 섬들처럼 인천 바다를 웨워싸고는 상륙을 하여서 괴뢰군들이 한복을 얻어입고 뺑손이를 쳤다는데 후방에 몰아다니는 졸개들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알고도 부러 그러는듯이 못된 버릇이 바싹 늘어갈 따름입니다
한동안 뜨음하던 이들의 출입이 다시금 잦어지고 그위에 곡식으로 현물세를 받아드리기 위하여 벌써부터 수량을 매기되 땅에서 나는 것이면 무엇을 막론하고 심지어는 조 수수의 알갱이 하나씩을 세어서 저울로 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논이면 논 밭이면 밭 한구통이 아무데든지 나는 곡식을 달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논 밭에서 기중 낫게 되었다 싶은 자리만을 골라서 이렇게 하므로 농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절망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토지를 농민에게 준다는 약속 아래 사실상 토지개혁이 단행되어서 농민들은 무상으로 토지를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결국 언제까지든 자기네의 피땀을 짜내야 할 이 토지가 얼마나 비싼 줄을 이제야 깨닫는 것입니다 그들은 토지개혁이 실시되던 때에 공짜로 땅을 얻는다고 우쭐거리던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되고 이제는 모다가 한입같이 「늦어도 우리 국군이 추수 전으로는 처들어와야지 그렇잖으면 다 굶어죽네」하고 목을 느리어 해방의 그날을 기두리는 것입니다
서울서 오는 사람의 말에는 인천 상륙은 아는 사람만 알고 거개가 캄캄소식인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폭격도 폭격이려니와 괴뢰들이 교통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서로 왕래를 할 수 없는 까닭이랍니다 그 좋은 네거리길들을 파고 뒤져서 토치카를 맨드는가 하면 밤마다 할머니거나 아이들이거나 괭이와 삽을 쥘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거나 잡어다가 남산 속에 굴을 파인다 하고 저들의 떠드는 선전은 이제 유엔군이 서울에 드러온다 하드라도 기어코 최후까지 시가전을 해서 물리친다는 것이랍니다
그도 그럴법한 것이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한 그길로 댓바람에 서울로 처올라왔드라면 모르겠으되 인천 상륙이 벌서 언제였다고 여지껏 밀치락 달치락 하면서 아침에 영등포까지 왔다가는 저녁이면 도로 후퇴를 한다니 빨갱이들이 최후발악을 하기에 알맞게끔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태까지 양가죽을 둘러썼던 시랑이들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니 저들의 어금니에 걸려든 것이 우리 신부님들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읍니다
그것은 구월 십육일 토요일이었드랍니다 용산에 있는 성신대학 부속중학교 성당은 오래전부터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님의 성해를 봉안하였기 때문에 해마다 이 날을 복자 김신부 첨례로 지켜왔었는데 때따라 붉은 서울에서 이날을 맞이하는지라 六·二五(6·25) 그날부터 서로 얼골을 볼 수 없이 시내 각처에 드려 박였든 신부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뜻깊게 이 순교의 날을 축하하였드랍니다
거룩할 하로를 지낸 신부들은 거이 피난소로 흩어져 돌아 가버리고 오직 세종로 본당 이신부님과 가회동 방신부님만이 으슥한 부엌방에서 묵기로 하였읍니다
밤중이 되자 밖에서 문 열라는 소리가 성화 같으므로 어린 학생이 나가서 엿보았드니 눈치가 수상하였든지 즉시 교장과 선생 신부를 깨워 피신하라고 일러두고는 대문을 열어주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었읍니다 어느 겨를에 무장한 폭도들이 마당에 들어서서 낱낱이 신부들의 이름을 대이면서 교장 이요셉 신부 선생 아가비도 백신부 그리고 거기 계시던 동성중학 정 마지아 신부님을 부뜰어가 는 것이 없읍니다
만약에 부엌간에 쉬시던 두 신부를 저들이 알았던들 꼼짝없이 잡혀가실 번한 것을 워낙 귀진 자리였기 때문에 세상모르고 주무실 뿐이였읍니다 한참 만에야 놀라운 소식을 듣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곧 나갈 수도 없어서 동이 트기를 기두리다가 마침내는 두 분이 다 요지음 하는 그 차림차림으로-즉 이신부님은 병든 노인 방신부님은 버젓한 새우젓 장수로 거리에 나섰드랍니다
이렇게 두 분 신부님은 요행이 목숨을 건지셨으나 세 분 신부님과 열열한 남녀 회장님들이 잡혀가신 뒤로 소식이 아득하니 대체 이북으로 끌려 가시었는지오? 주검을 당하셨는지요?
잡어가는 자들의 말에는 으례하는 입버릇으로 「잠간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였지마는 신부 하나의 힘이 일개 사단의 병력에 비중(比重)한다고 믿는 저들인 만큼 세 분이나 되는 신부를 그냥 내버려둘 리는 만무합니다 한번 붙들려 가기가 망정이지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신부님들을 그리워한들 다만 부질없는 생각에 그칠 뿐이건만 그분들의 덕망과 학식이 아까울수록 가뜩이나 가난한 우리 교회의 손실이 새삼스럽게 안타까워집니다
다른 종교의 목사나 중과 같이 교역자 되기가 쉬옵다면 모르되 가톨릭 사제(司祭)란 적어도 십이삼년이 걸려서야 겨우 신부 노릇을 (하)도록 마련이요 그도 저 신부님들처럼 훌륭한 것이 아니라 날 같은 바보조차 끼어있는지라 천주께서 영혼을 거두시려거든 차라리 값없는 이런 몸을 먼저 걷우심이 옳지 아니하겠읍니까?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할 때 이것은 나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입니다
천주님이 전지(全知) 전선(至善)하실진대 나처럼 공없고 죄많은 영혼을 먼저 걷우시어서 무엇에 쓰시겠읍니까? 적침(敵侵)이래 뼈마저 수난을 당하시던 복자 안드레아의 성해(聖骸)를 뫼시고 가장 가까이 복자의 뒤를 따르려던 신부님들이시었으니 천주께서는 그들의 소원을 어여삐 여기신 것입니다
강건너 마을에서 따꾹 총소리가 들려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이 바보!
같은 사제직(司祭職)을 받았으면서도 서로의 사이가 이토록 두드러졌으니 그들 천당 곧 집에 쌓이진 「루비」같은 紅柹(홍시)라면 나는 삼동내 나무 끝에 매어달린 돌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