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犧牲(희생)과 熱誠(열성)의 結晶(결정)! 廢墟(폐허)에서 再建(재건)의 春川大聖堂(춘천대성당)

남재성
입력일 2026-06-02 15:26:14 수정일 2026-06-02 15:26:14 발행일 1952-11-01 제 117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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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發(발)AIF】
韓國江原道春川敎區(한국 강원도 춘천교구)의 聖(성) 골롬바會(회) 宣敎神父(선교 신부)들은 八月十五日(8월 15일)에 再建(재건)한 敎區本聖堂(교구 본성당)을 祝聖(축성)하였다. 비록 一部分完成(일부분 완성)에 불과하나 戰爭(전쟁)으로 荒廢(황폐)한 韓國(한국)의 熱心敎友(열심 교우)와 宣敎師(선교사)의 熱誠(열성)과 犧牲(희생)에 대한 선물인 것이다.

二次大戰(2차 대전)의 발발 以後(이후) 한국의 이 地方(지방)은 모-든 골난에 당면하였던 것이다. 一九四十一年(1941년) 眞珠灣爆擊(진주만 폭격)으로 戰爭(전쟁)이 始作(시작)된 以來(이래) 一九四五年八月十五日(1945년 8월 15일) 美軍進駐(미군 진주)에 依(의)해 釋放(석방)될 때까지 이 地方(지방)의 聖(성) 골롬바會神父(회 신부)들은 日人(일인)의 손에 監禁(감금)되어 있었다. 解放(해방)으로 監禁(감금)되었던 神父(신부)들은 各本堂(각 본당)으로 도라가고 「토마쓰·퀸란」 (具(구)) 主敎(주교)는 一九五〇年八月十五일(1950년 8월 15일)까지 竣工完了豫定(준공 완료 예정)으로 이 아름다운 大聖堂建築工事(대성당 건축 공사)를 監督(감독)하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一九五〇年六月二十五日(950년 6월 25일) 共産軍(공산군)은 三八線(38선)을 넘고 「귀일란」 主敎(주교)와 神父五人(신부 5인)이 捕虜(포로)가 되어갔던 것인데 그 中(중) 被殺(피살)된 「파트릭 레일리」(羅(나)) 神父(신부)와 「안토니 콜리어」(高(고)) 神父(신부)와 「요셉 막긴」(陳(진)) 神父(신부)의 세 분의 遺骸(유해)는 發見(발견)되었고 「귀일란」 主敎(주교)와 「필립 크로스비」 神父(신부)는 아직 捕虜(포로)로 있다고 共産軍代表(공산군 대표)가 板門店(판문점)에서 發表(발표)하였으나 「프랑크 카나반」 神父(신부)는 아직도 行方不明(행방불명)으로 알 수가 없다

一九五〇年 六月以來(1950년 6월 이래) 戰爭(전쟁)은 江原道地方(강원도 지방)을 휩쓸어 春川(춘천)은 네 차례나 占領(점령)되어 完全(완전)한 廢墟(폐허)가 되어버렸다.

一九五一年四月(1951년 4월) 最後(최후)로 美軍(미군)이 進駐(진주)하자 春川敎區(춘천교구) 副主敎(부주교) 「휴-버르 헤이웃드」(昊(오)) 神父(신부)는 春川(춘천)으로 도라왔으나 主敎座(주교좌)가 될 이 建物(건물)의 築石(축석) 우에 쌓여있는 돌 하나를 차저 볼 수 없을 만치 破壞(파괴)되어 있었다 골롬바會神父(회 신부)들은 얼마 後(후) 戰線(전선) 以南(이남)에 있는 本堂(본당)을 收復(수복)하였는데 많은 敎友(교우)는 잡혀가기도 하고 혹은 被殺(피살) 당하였으나 살아남은 敎友(교우)들은 미사와 聖事(성사)를 갈망하였다. 戰線(전선)에서 十八哩(18리) 以南(이남)에 있는 江陵(강릉)에서 「토마스 네리간」(簡(간)) 神父(신부)는 小學校(소학교)와 中學校(중학교)를 再開(재개)하고 聖(성) 바오로會邦人修女(회 방인 수녀)들은 南方安全地帶(남방 안전 지대)로 避難(피난) 갔던 孤兒(고아)들을 다시 다려왔다. 春川(춘천)서는 「헤이웃드」(오) 神父(신부)가 煉瓦製(연와제) 二層建物(이층 건물) 主敎館(주교관)을 再建(재건)하여 臨時聖堂(임시 성당)으로 使用中(사용 중)인 바 大聖堂再建(대성당 재건)을 위하여 同神父(동 신부)는 信者(신자)들과 같이 勞役(노역)에 從事(종사)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一部分(일부분)만이 집웅을 덮고 間(간)을 막어 聖堂(성당)으로 쓰나 全部(전부)의 完成(완성)은 今年聖誕(금년 성탄)까지 걸닐 豫定(예정)이라 한다

全韓國(전 한국)의 교우들과 같이 春川(춘천) 교우들도 苦難(고난) 중에 있으나 再建(재건)과 前進意慾(전진 의욕)에 불타고 있다

(사진은 「귀일란」(퀸란) 主敎(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