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나는 이 이약이를 특히 이 봄을 마즈막으로 학창생활을 등지고 취직전선(就職戰線)에 나서지 아느면 아니되는 여러 동모들에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층더 교문박게 세상을 모르고 지나오다가 갑작이 취직전선에 나서지 아느면 아니되는 누이들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물론 이 이약이는 내 자신이 아직것 남에게 배우는 처지에 잇는만큼 내 홀로 창작해낸 바도 아니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연구함에서 어든 결론도 아니다.
다만 내 자신이 어느정도까지 그와가튼 길을 밟어보앗슴으로 현재 또한 그와가튼 길을 밟으랴 하고 잇슴으로 자연히 보게되고 듯게되고 깨닷게 된 것을 이약이 하려고 함에 지나지 안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나의 편견도 잇을 것이요 오류(誤謬)도 잇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먼츰 이 모든 것을 널리 용서바들 것을 예측하고 아모 게통도 서지 안는 이 글을 쓴다.
물론 이것이 다른 외교인과 처지를 달니하야 참다이 천주를 밋고 텬주의 존재를 인식(認識)함으로 어든 구든 신앙을 가지고 잇는 우리 천주교회내 동모들에게는 하등의 필요가 업슬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도 나와가티 의지(意志)가 약하고 또한 그 생활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여 가는 동모들에게는 다소간 필요한 점도 잇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二
오늘날 사회의 경제제도가 점점 발전되여 감을 따라 물질이 점점 신앙의 구역을 침범하여 들어오는 것은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다.
즉 오늘날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을 빌려서 이른다면 자본주의 경제제도(資本主義 經濟制度)에 포함된 모순의 필연적 현상(必然的 現狀)인 중산게급(中産階級)의 몰락은 오랫동안 우리들이 그 속에서 자라낫고 그 속에서 압날을 꿈꾸어 오든 가족주의(家族主義)를 근본적으로 파괴식히고 말앗다.
오늘날에 잇어서 이미 몰락하여간 노동층(勞動層)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이로말미암아 방금 몰락하여가는 우리들의 가정에 잇어서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식들대로 각각 그 살길을 차저서 갈려지지 아느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과거에 학창생활에서 싸혀오든 모든 리상(理想)이란 것이 깨여지지 아늘 수 업는 것이다.
일가를 통솔해 나가는 가장(家長)의 권력(勸力)이 분쇄됨을 따라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를 거역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옛날과 같이 그 아들을 제재할 힘이 없다.
도로혀 그 아버지가 하등의 경제적 세력이 업는고로 집안에서는 자식의 의견(意見)에 딸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머니와 딸 그 사이도 그와같다.
그 어머니가 딸에게 신세를 끼치고 잇는 이상 그 어머니는 그 딸의 행동 일절에 대하야 어미니로서의 지배권리를 다가질 수 업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야 자녀들은 왼갓 사조(思潮)에 휩쓸려 부모를 반역하고 가정의 일을 생각지 안코 종교도 반대하여 버린다.
그 일례를 들면 리혼, 자유결혼, 배교 등이라 하겟다.
더욱히 딸들이 취직이라는 일홈알에서 가장 자유시간(自由詩間 卽 外出時間(자유시간 즉 외출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면 그 타락과정(科程)을 자유결혼! 자유연애 소위 「연애는 신성하다」 「녀자에게도 개성(個性)이 잇다」는 그 문자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잇는 것이다.
여기에 있서서 우리들은 한번 생각하여 볼진대 이같은 위험성이 잇는 우리들의 앞길! 직나어가야만 할 취직전선은 우리들의 신앙생활(信仰生活)에 위기(危機)가 다달엇다고 하지 않을 수 업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그 위기에 들어가지 안음으로써 그 위험을 면할 수 잇는 것일까? 물론 업는 것이다.
우리들은 반다시 생활전선에 나서야만 할 것이요 또한 나서지 안으면 안이될 것이다.
그 일례(一例)를 들어 말한다면 리상적 가정에 주부(主婦)로서의 현모양처(賢母良妻)로서의 훌륭한 자격과 필요한 교양을 밧고 거기에 대한 곱다란 리상을 가지고 교문을 나선 그네들이면서도 그네들은 교문을 나서자말자 무거운 일가(一家)의 생활문제를 연약한 두억개에 메고 굴욕과 치욕과 모든 부도덕한 분위기(雰圍氣)에 휩사인 취직전선에 나서는 것을 우리들은 얼마든지 보지 안엇는가? 그것뿐이랴?
사무원 二(2)인 채용에 칠팔십명의 지원자들이 전문학교에 졸업증서를 엽헤 끼고 달겨드는 것을 보지 안엇는가.
그리고 또한 니꼬진 냄새에 험푹 삶기고 태양과 거리를 멀리한 샛노란 얼골들을 가지고 힘없는 발거름을 옴기고 잇는 아직도 어린아이라면 어린아이라고 할 수 많은 어린 누이들과 결혼기가 갓가운데도 아직도 꿈도 꾸어보지도 못하는 나많은 누이들과 그리고 어린자식에게 주어야만 할 그젖(乳)을 마음것 그자식에게 주어보지도 못하고 텅뵈인 빈방안에 남겨놋코 넘처흘어는 그젖가슴을 그대로 안고 몃푼의 임금을 밧기위하야 공장으로 가는 불상한 어머니들을 불상한 안해들을 파괴당한 가정에 주부들을 우리들은 아침마다 성당에 가는 길에 그 얼마나 보는 것일까? 그리고 그네들의 대부분이 작년까지라도 여유잇는 집안에 자라나든 사람들인 것을 보지 안는가?
종로를 한번 걸어보자!
그곳에는 녀사무원 모집! 녀긔자 모집! 져닉공 모집! 등등의 광고들이 얼마든지 부터잇지 안는가?
이가티 말함은 직우리들의 일가족의 생활문제를 두 억개에 지고 취직전선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리면 우리들은 이자티 공세(攻勢)의 입장에 서서 신앙생활의 위기를 어떠케 하여야만 할 것인가?
거기에 잇서서 나로서는 막다달은 이 위기를 무사히 통과하려고 할진대 반다시 다음에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재로 우리들은 맹목적 교우가 되지말고 천주의 존재를 참다인 인식하는 의식적(意識的) 교우가 될 일 - 둘재로는 교우된 본분을 다하는 바 동시에 참다이 이 현실사회를 인식할 것(직! 박것 사회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잇는 눈을 가지란 말이다) 셋재로는 어데까지든지 카톨릭적 지반우에 토대를 둔 우리의 신앙과 지식을 견고케 하야 모든 외게(外界)의 공세(攻勢)에 대한 투쟁준비를 단단이 할 것. 넷재로 우리들은 일치단결하야 서로 손을 마조잡고 나아갈 것 등이다.
그리하야 우리들은 더욱 더욱 신앙의 토대를 견고케 함으로서 어떠한 유혹과 환란이 닥치더래도 굴치 않고 나아가 싸울만한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끗 (一九三二, 三月(1932, 3월))
李相驥(이상기)